[사설]무늬만 국정쇄신案이라면 차라리 내지 말아야

  • 입력 2008년 5월 16일 22시 55분


청와대와 한나라당이 민심 이반을 수습하기 위한 국정쇄신 방안을 19일에 내놓을 예정이라고 한다. 이왕 내기로 했다면 제대로 내놓아야 한다. 많은 국민의 공감을 얻을 수 없는 무늬만의 형식적 쇄신안이 되면 오히려 국민의 실망만 키울 것이다.

한나라당 측은 청와대의 권한과 기능을 재조정하고, 책임총리제를 강화하며, 청와대에 정책특보를 신설하고 실무급 당정회의를 정례화해 사전 정책조율을 긴밀히 한다는 안을 마련한 모양이다. 인사쇄신도 건의할 것이라고 한다. 문제는 실행될 구체적 내용이다. 인사쇄신도 필요하지만 이번에도 악수(惡手)를 두면 정권 위기의 수렁에 더 깊이 빠질 우려가 있다.

구호성(口號性) 다짐만으론 국민을 감동시킬 수 없다. 이명박 대통령은 ‘국민을 섬기는 정부’를 강조했지만 국민 정서를 무시하는 듯한 요직 인사를 강행하고, 국민과 공무원을 일방적으로 가르치려는 듯한 모습을 자주 보였다. 그 바람에 ‘국민을 섬긴다’는 말 자체가 오히려 국민의 거부감을 키웠다. 대통령수석비서관 내정인사 발표를 하면서 ‘베스트 오브 베스트를 골랐다’고 한 것도 결과적으로 국민 사이에 냉소를 자아냈음을 기억해야 한다.

청와대의 정무 기능을 보완하고 청와대와 내각의 일부 인사 실패를 교정(矯正)하는 것도 ‘이번엔 뭔가 다르구나’하는 반응이 다수 국민 사이에서 나올 정도가 돼야 한다. 먼저 기용한 측근들이 시원찮다고 그 반대편의 또 다른 시원찮은 측근들로 맞바꾸어서는 민심을 얻을 수 없다. 이 대통령은 초기 인사의 후폭풍을 겪으며 정부 요직 면면의 ‘이미지’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절감했을 것이다.

이번에 이 대통령은 국정 권한과 책임을 내각 각 부처에 확실하게 분산시키는 조치를 취할 필요가 있다. 모든 국정 사안에 대한 대통령의 만기친람(萬機親覽)은 애당초 무리일 뿐 아니라 온갖 현안에서 대통령이 스스로 일선 방패막이가 돼야 하는 결과를 빚기 십상이다. 당초 청와대 진용이 짜여질 때도 지적이 나왔던 것처럼 국정의 실무경험이 없는 교수 출신들을 내각에 대한 ‘코디네이터 그룹’으로 편성한 것부터가 문제를 자초한 것이었다. 각 부처에 최대한의 권한을 주되 함량 미달인 장관들은 경질해야 한다.

이 정부가 힘을 받지 못하고 지리멸렬 상황에 몰린 요인으로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와의 불화를 빼놓을 수 없다. 어쩌면 여기서부터 많은 것이 잘못됐다고 볼 수도 있다. 그 배경이 무엇이든 이 대통령과 박 전 대표가 서로 등을 돌리고는 정권의 안정을 꾀하기 어렵다. 박 전 대표는 이 대통령이 가장 먼저 소통해야 할 상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여권(與圈)의 자중지란(自中之亂)을 해결하지 못하면 국민과의 소통을 아무리 강조해도 공허하게 들릴 뿐이다. 박 전 대표도 자신과 계파 이익에만 매달려 정권의 위기를 방조한다면 일시적 영향력은 과시할 수 있을지 몰라도 결국 국민적 지도자로 인정받기 어려울 것이다.

이 대통령과 한나라당은 야당들을 경쟁 상대이자 국정 파트너로 끌어들이는 정치력을 보여줘야 한다. 여권은 미국산 쇠고기 파동 및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 문제에서 야당의 도움을 받기 위한 진정 어린 노력을 거의 하지 않았다. 이런 자세로는 이달 말 임기가 시작되는 18대 국회에서도 과반 의석의 힘만으로 정국을 안정시키고 국정을 효율적으로 운영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진정한 국정쇄신의 의지를 담은 내용을 내놓지 못할 것이라면 구태여 19일에 졸속방안을 꺼낼 일은 아니라고 우리는 본다. 제대로 된 방안을 마련하는 데 준비가 더 필요하다면 국민에게 좀 기다려달라고 해도 좋다. 이번의 쇄신안마저도 헛발질하는 모양새가 되면 국민의 식은 마음이 더 얼어붙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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