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논란이 되는 미국산 쇠고기의 위험성은 충분한 과학적 근거나 객관적 사실에 바탕을 둔 것이 아니다. 실제보다 부풀려진 측면이 많다. 실제 국제수역사무국(OIE)에 따르면 지난 20년간 미국에서 발생한 광우병은 3건에 불과했다고 한다. 그뿐만 아니라 3억에 이르는 미국인과 250만 재미동포, 그리고 수십만에 이르는 우리 유학생과 기업인도 아직 아무 문제 없이 쇠고기를 먹고 있다. 미국에서 연령과 부위에 관계없이 쇠고기를 수입하는 전 세계 96개국의 국민들도 별 탈 없이 미국산 쇠고기를 소비하고 있다.
국민의 건강을 해칠 가능성을 철저히 따져보고 검역 주권도 제대로 행사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동안 정부가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국민의 불안감을 해소하는 데 소홀함이 있었다면 지금이라도 발 벗고 나서서 이를 불식시켜야 한다. 최근 우리 정부는 미국에서 광우병이 발생하면 즉각 수입 중단 등 필요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약속했고, 미국도 우리의 방침을 수용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런 만큼 국민들도 정부의 방침과 전문가의 의견에 귀를 기울여 받아들일 것은 받아들이는 성숙한 자세가 필요하다. 합리적 토론이나 대화가 아니라 무책임한 의혹 제기로 괴담의 수준으로까지 확대 재생산되는 것은 선진 사회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미국산 쇠고기 문제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것도 안 될 일이다. 정치권 일각에서 한미 FTA 비준과 쇠고기 문제를 연계해 비준을 지연시키고 있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쇠고기 수입은 한미 FTA와는 본질적으로 별개의 문제다.
지금 우리 경제는 성장잠재력이 약화되는 가운데 원자재가격 급등과 물가 불안 등으로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 이를 극복하고 성장을 지속해 나가기 위해서는 한미 FTA의 조속한 발효를 통해 세계 최대 시장인 미국시장을 공략하는 일이 시급하다.
최근 우리 기업들은 미국시장에서 상당히 고전하고 있다. 우리 제품의 시장점유율이 매년 하락하고 있으며 이미 자동차와 석유화학 제품 등 몇 개 품목을 빼고는 대부분 중국에 추월당한 상태다. 기업들로서는 한미 FTA가 이런 어려운 상황을 타개하고 일본 중국 등 경쟁국보다 유리한 위치에서 세계 최대 시장을 적극 활용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차기 국회에서 비준 문제를 논의하면 된다는 일부 주장도 있지만 17대 국회가 한미 FTA 협상을 시작했고 오랫동안 공청회, 토론회, 청문회 등을 통해 국민 의견을 수렴하고 협상 결과를 검증해 왔다.
만약 공이 차기 국회로 넘어가면 이 모든 절차를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한다. 시간과 비용 낭비는 물론이고, 우리가 먼저 비준해 미 의회와 행정부를 압박한다는 전략에도 차질이 생긴다.
FTA를 통해 우리가 얻게 될 혜택은 미국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크다. 우리에게 미국은 놓칠 수 없는 시장이지만 미국으로서는 우리와의 FTA가 절실하지 않을 수도 있다. 기회는 항상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성장 활력을 되찾고 기업의 투자, 생산, 고용 효과를 높이기 위해서는 한미 FTA 협정이 조속히 비준되고 발효돼야 한다. 17대 국회가 이런 책임을 저버리지 말고 국가적 소임을 다해 주기를 바란다.
손경식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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