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이홍규]선진화에 영혼을 불어넣어야

  • 입력 2008년 5월 19일 03시 01분


실용주의가 이명박 정부의 실천원칙이라 한다면 선진화는 그 목표요, 가치라 할 것이다. 무릇 조직이 성공하려면 그 구성원들이 목표와 가치를 공유하고 있어야 한다. 과연 지금 여권은 하나의 가치로 무장돼 있는가.

경제팀, 이견 조정의 프로돼야

시장경제는 자유와 경쟁의 시스템이다. 자유가 혁신을 만들고, 혁신은 차별을 가져오고, 그 차별로 시장은 더욱 경쟁적이 되며, 혁신은 양산된다. 그러니 시장의 자유와 정부의 간섭 사이에는 언제나 긴장이 존재한다. 그러나 시장경제라 해서 시장과 정부가 서로 배타적일 수는 없다. ‘시장 대 정부’가 아니라 ‘시장과 정부’다. 문제는 그 양자가 어떻게 해야 서로 보완적일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바로 그 보완적이게 하는 기술이 시장경제의 선진화를 가늠하는 기술이다.

현 정부의 경제팀은 아직 그런 기술을 보여 주지 못하고 있다. 시장을 보완하고 체질을 강화하기보다 성장에 집착하는 것 같고 금리, 환율에 대한 발언도 은유적이기보다 직접적이다. 말에 지나친 자신감과 조급함도 묻어 나온다. 그래서 국민은 불안하다. 시장경제를 하려면 시장을 믿고 기다리는 여유, 그리고 때를 가릴 줄 아는 신중함이 필요하다. 맹자의 말처럼 ‘해야 하지 않을 일을 하지 않는(無爲其所不爲)’ 절제도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시장은 힘을 잃는다. 시장이 정부 보고 말하는 것은 심판자가 되라는 것이지 프로모터가 되라는 것이 아니다. 프로모터가 되면 시장 실패보다 정부 실패를 걱정해야 한다.

시장경제가 선진화되려면 정부의 조정시스템이 탁월해야 한다. 특히 경제정책에는 여당뿐 아니라 많은 정부기관의 전문적 견해와 이해관계가 존재하므로 조정능력이야말로 ‘일이 되게 하는 기술’이요, 국정을 무리 없이 끌고 가는 요체다. 조정을 잘하려면 소통을 잘해야 한다. 소통이란 같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과정이다. 소통을 잘하는 리더는 있는 듯 없는 듯하지만, 일에 무리가 없고 소리가 나지 않는다. 경제정책에 관한 작금의 당정 간 논란은 그 점에서 프로라 하기 어렵다.

시장경제가 선진화되려면 또한 품격이 있어야 한다. 선진화는 특히 품격에 예민하다. 우리 경제가 넘어야 할 산이 바로 품격이다. 시장경제의 품격은 배려다. 대외적으로도 그러하지만, 대내적으로도 그렇다. 엄정한 경쟁과 차별의 논리가 존중되면서도, 다른 한 손에는 배려의 미덕이 들려 있어야 한다. 즉, 애덤 스미스가 말한 ‘동감(sympathy)’이 있어야 한다. 시장이 중요하다고 해서 따듯한 마음을 잃으면 결국 시장을 잃게 되는 것이다. 친기업, 친시장이 중요하면 할수록 근로자부터 만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시장경제를 만드는 지혜다.

선진화란 새로운 창조의 과정이다. 창조란 열심히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많이 생각하고 열심히 듣는 데서 창조적 아이디어가 나온다. 미국의 혁신적 기업인 구글은 직원들에게 근무시간의 20%를 자유시간으로 준다. 선진화란 바로 그런 모델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부지런함도 중요하지만 그것만으로 선진화를 이루기에는 국민의 시간당 노동비용이 너무 비싼 나라가 되어 버렸다.

급할수록 기본으로 돌아가라

‘급할수록 돌아가라’고 했다. 정부가 지금 할 일도 기본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과연 정부가 이루려는 가치가 무엇인지 분명해야 갈 길이 명확할 수 있다. 그래야 방향 없는 실용이 아닌 방향 있는 실용이 될 수 있다. 가치가 공유돼야 조정이 쉬워지는 법이다. 이제는 선진화에 영혼을 불어넣어야 한다. 자신이 생각하는 가치가 타인과 어떻게 다른가를 확인하고 그 해소를 위해 ‘끝장 토론’이라도 해야 한다. 그럼으로써 자신이 가진 ‘동굴의 우상’에서 나와야 한다. 경제에 파고가 높으니 더욱 그런 노력이 필요하다.

이홍규 한국정보통신대 경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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