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오세열]어린이의 눈은 국가의 경쟁력

  • 입력 2008년 5월 20일 02시 57분


얼마 전 빛바랜 초등학교 졸업사진을 꺼내 보았다. 같이 졸업한 62명 중 안경을 낀 친구는 단 4명이었다. 초등학교를 3년 전에 졸업한 딸아이 졸업사진도 보았다. 같은 반 친구 39명 중 16명이 안경을 썼다. 30년 사이 근시나 난시 등 굴절 이상이 급증했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초등학생의 근시 유병률은 1970년대 8∼15%, 1980년대 23%, 1990년대 38%, 그리고 2000년대에 46.2%다. 계속 증가하는 추세다.

조기 치료해야 정상회복 가능

최근 동아일보의 ‘우리 아이 시력 1.0 지키기’란 시리즈는 우리 사회에 어린이 눈 건강의 중요성을 일깨워 주는 계기가 됐다.

시력은 생후 2, 3개월에 가장 빨리 발달하며 3∼5세에 0.5 정도에 이른다. 이후 8세까지 계속 발달해 정상 성인시력인 1.0에 도달한다. 이 과정에서 시력이 발달하지 못하면 약시가 된다. 약시는 조기에 치료하면 정상 시력을 회복할 수 있다. 그러나 치료시기를 놓치면 영구히 시력이 개선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

근시의 원인은 정확히 밝혀져 있지 않다. 대체로 유전 및 환경 요인으로 나눠 볼 수 있다. 부모 모두가 근시일 때 자녀의 근시 비율은, 부모 모두 근시가 아닌 자녀에 비해 6.4배나 높다. 환경적 요인으로는 근거리 작업을 들 수 있다. 책 읽기와 글쓰기, TV 시청, 컴퓨터 오락기 휴대용게임기 조작 등이다. 근거리 작업을 한다고 해서 근시가 발생하거나 진행된다고 단정적으로 말할 수는 없다.

다만 근거리 작업을 오래하면 근시가 진행된다는 보고는 많다. 따라서 책 읽기와 글쓰기 등 근거리 작업을 50분쯤 한 뒤에는 10분간 쉬는 게 좋다. 쉴 때 컴퓨터 및 게임은 금물이다. 휴식을 취할 때는 먼 곳을 바라보거나 교실 밖이나 집 밖에 나가서 노는 것이 좋다.

싱가포르는 근시 유병률이 높은 나라다. 한 통계에 따르면 싱가포르 고등학생의 80%가 근시나 난시로 안경을 착용한다고 한다. 싱가포르는 2001년에 국가근시예방프로그램(National Myopia Prevention Program)을 만들어 매년 국가적인 캠페인을 한다. 2006년의 캠페인이 비전 브레이크(Vision Break)였다. 30∼40분 학교수업을 한 후 5분간 눈을 쉬게 하는 것이다. 휴식시간에 단순히 눈을 쉬게 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활동이 적힌 회전판 놀이를 통해 눈 건강에 대한 학생들의 인식을 높여주고 흥미도 유발시켰다.

공부하는 자세, 조명, TV나 컴퓨터 모니터 위치나 거리 등도 눈 건강과 관련이 있다. 어린이 눈 건강을 위해 바른 자세로 공부하고, 조명은 간접조명으로 그림자가 지지 않게 해준다. 책은 30cm 떨어져서 읽고, 컴퓨터는 50cm, TV는 2m 이상 떨어져서 보게 하자.

공부자세-정기검진에 관심을

올해 3월 초등학교 1학년 학생과 그 부모가 진료실을 찾았다. 그 부모는 아이가 칠판이나 모니터를 보지 않고 산만하다는 선생님의 말에 걱정이 여간 아니었다. 시력검사를 해보니 양안 모두 0.2였고 근시가 있었다. 안경 교정으로 시력은 양안 1.0이 됐다. 5월에 진료실을 다시 찾았는데 아이는 안경을 끼고 학교생활을 잘하며, 산만함도 없어졌다고 한다.

아이의 눈 건강을 위해 최소한 3세 때는 시력검사를 받는 게 좋다. 그 이후 매년 1, 2회 정기 검진이 중요하다. 조기 진단 및 치료가 어린이의 삶의 질을 높이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국가, 사회단체, 부모, 의사 등이 모두 어린이 눈 건강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현대는 정보화 사회이다. 정보의 90% 이상을 눈으로 받아들인다. 어린이 눈 건강을 지키는 게 미래 국가경쟁력을 높이는 지름길이다.

오세열 삼성서울병원 안과 전문의 성균관대 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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