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홍수영]숭례문 잃은 슬픔 벌써 잊었나

  • 입력 2008년 5월 20일 02시 57분


“조상님 죄송합니다.”

숭례문이 화재로 소실된 뒤 100일째를 하루 앞둔 19일. 숭례문 복원 공사 가림막에는 한 시민이 써놓은 글씨가 선명했다.

일부 투명하게 해 놓은 가림막 사이로 보이는 숭례문은 반만 남은 몸뚱이를 힘겹게 철제 구조물에 의지한 채 슬레이트 지붕으로 덮여 있었다.

복원 현장 옆으로 시민들이 분주하게 오갔지만 누구의 눈길도 머물지 않았다. 화재 직후 시민들의 추모 행렬이 끊이지 않았던 숭례문 광장은 여느 공사 현장과 다르지 않았다.

‘숭례문 49재’를 지낸 이후에도 토요일마다 추모행사를 여는 우룡(58) 스님은 “49재가 열린 3월 29일 이후 숭례문을 찾는 사람들이 거의 없다”고 말했다.

화재 직후 누리꾼들은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 숭례문 관련 카페를 만들며 국보 1호를 잃은 슬픔을 달랬다.

하지만 네이버와 다음에만 120여 개 가까이 개설됐던 카페에는 4월부터 대부분 아무런 글도 올라오지 않고 있다.

각종 단체, 인터넷 사이트 등의 행사, 후원 약속도 잇따랐지만 “∼하겠다”는 약속도 잘 지켜지지 않고 있다.

대한가수협회와 한국연예제작자협회가 공동으로 열겠다고 밝혔던 ‘문화재 지킴이―사랑한다 대한민국’ 콘서트도 무기한 연기됐다.

당초 가수협회와 연제협은 3월 29일을 콘서트 개최 날짜로 정하면서 “문화재 보호 기금 마련을 위한 수익사업, 자선행사 등을 전국적으로 펼쳐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연제협 관계자는 “당시만 해도 쉽게 콘서트를 열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기업 후원 문제 등의 이유로 열리지 못했다”며 “현재 계속 추진 중”이라고만 말했다.

복원에 힘을 보태겠다던 기업들도 국민의 관심이 시들해지자 한발 물러서는 분위기다.

숭례문을 기업 홍보에 활용했던 인근 기업들은 화재 직후 “복원에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되면 동참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했지만 현재까지 별다른 움직임이 없다.

황평우 문화연대 문화재연구소장은 “여론이 냄비처럼 끓다가 지금처럼 관심이 식을 것으로 예상은 했다. 추모 인파가 그때처럼 몰려들어야 한다는 말은 아니지만 아쉽다”고 말했다.

화재 당시 국민들은 문화재에 대한 애정과 관심의 부족으로 숭례문을 잃었다는 데 똑같은 책임을 느꼈다. 그 책임은 숭례문이 제 모양을 되찾는다고 없어지거나 줄지 않을 것이다.

홍수영 사회부 gae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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