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김창혁]MB식 ‘脫여의도’의 코스트

  • 입력 2008년 5월 22일 02시 55분


이명박 대통령이 요즘 부쩍 소통(疏通)을 강조하는 걸 보면 속으로 억울한 게 많은 듯하다. ‘강부자’ ‘고소영’ 내각은 말할 것도 없고 ‘2MB(MegaByte·이명박)’나 광우병 같은 단어 몇 개에 포위돼 옴짝달싹 못하고 있으니 그럴 만도 하다. 취임 100일도 안 된 ‘새 대통령’이라고 부르기조차 민망하다.

그러나 억울해할 것 없다. 쉽게 번 돈은 쉽게 나가기 마련이다. 국민은 이 대통령에게 ‘건국이래 최대’라고 할 만큼 압도적인 표차(531만 표)의 승리를 안겨줬고, 총선에서 153석의 과반 의석까지 마련해줬다. 상상할 수 없는 목돈을 ‘경제 살리기용 종자돈’으로 쥐여준 셈이다. 이 대통령이 최선이라고 믿어서가 아니라 노무현 5년, 더 길게는 민주화 정권 10년의 무능과 불임(不姙)에 절망했기 때문이다. 운칠기삼(運七技三)이랄까, 이 대통령으로선 너무 쉽게 번 돈이었다. 그렇게 생각해야 한다. 그래서 당선 첫마디가 “국민을 섬기겠다”는 다짐 아니었나. 23%, 혹은 19%까지 내려갔다는 지지율 수준이 원래 이 대통령의 ‘민족자본’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거기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6월 3일이 취임 100일이다. 중국 방문 기간(27∼30일)을 빼면 열흘도 안 남았다. 그제 통합민주당 손학규 대표와 만날 때 주변 참모들에게 “100일이 언제지?”라고 물었다는 걸 보면 궁리가 많은 듯하다. 남은 돈으로 포트폴리오를 새로 짜는 일에서부터 ‘소통의 기술’을 연마하는 것까지…. 시원한 답이 나오지 않을 땐 전고(典故)를 살펴보는 것도 한 방법이다. 예컨대 역대 정권의 내각 포트폴리오도 ‘원 포인트’가 될 수 있다.

이명박 조각(組閣)에서 한 가지 특기할 만한 사실은 국회의원 출신이 전무(全無)하다는 점이다. 김영삼 정부 조각 때는 모두 6명(이해구 박희태 이민섭 이인제 최창윤 김덕룡)이 포진했었다. 김대중 정부는 연합정권이라 각료 17명 중 무려 12명(박정수 박상천 천용택 김정길 이해찬 강창희 신낙균 박태영 주양자 최재욱 이정무 김선길)이 전현직 의원이었다. ‘아웃사이더 정권’으로 불린 노무현 조각 때도 3명이나 있었다.

정치가 4류(流)라고는 하지만 괜찮은 국회의원은 도덕성이나 공직에 대한 책임감에서 어느 정도 검증된 선수라고 볼 수 있다. 교수들과는 비교가 안 된다. 또 정부와 여당의 당정 간은 물론이고 대야(對野) 소통의 기술도 갖춘 사람들이다. 민주당 손 대표는 이명박 정부의 인사를 ‘선거 동맹’이라고 비난했지만, 사실은 ‘선거 동맹’이라기보다 ‘캠프 동맹’ ‘사조직 동맹’에 가깝다. 정권을 창출한 당이 주도적으로 정부에 참여하는 선거 동맹은 ‘체급(體級)’부터가 경량급의 캠프 동맹과 다르다.

이 대통령이 가끔 ‘탈(脫)여의도 정치’를 언급하는 심리적, 정치적 저변이 짐작되지 않는 바는 아니다. 그러나 ‘탈여의도’가 인사나 공천, 정치적 소통에서 ‘솎아내기 전략’으로 흘러가거나 캠프 정치의 합리화에 이용돼선 안 된다. 그게 잘 안 통한다는 사실은 이 대통령도 아마 지금쯤 느낄 것이다.

대통령이 온 국민과 직접 소통할 수는 없다. 첫 관문은 ‘국민의 대표’들이 모인 여의도일 수밖에 없다. 그 소통의 순서는 한나라당이 과반 여당으로 여의도를 장악하는 18대 국회에서도 마찬가지다.

김창혁 논설위원 ch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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