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4월 23일, 화창한 봄 날씨 속에 잠시 한눈팔다 벌어진 일이었다. 38세에 생긴 늦둥이 아들인데 지체장애인인 부인이 돌볼 수 없어 데리고 나왔었다.
김 씨에게 아들은 인생의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말 그대로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들이었기에 그가 받은 충격은 말할 수 없이 컸다.
동대문시장을 중심으로 미아보호소를 샅샅이 훑었지만 찾을 수 없었다. 실의에 빠져 부인이 있는 고향 전남 장성으로 내려갔지만 서울에 가끔씩 돌아와 아들이 있을 만한 학교나 보육원을 찾았다.
한 줄기 희망이 2004년 6월 생겼다. 지인의 소개로 알게 된 실종아동전문기관(보건복지부 위탁)에 유전자(DNA)를 채취해 맡겼다. 경찰에는 2006년 신고했다.
이 기관의 의뢰로 DNA 대조작업을 벌인 서울 중부경찰서는 김 씨의 유전자와 일치하는 어린이가 서울 양천구의 보육시설에 있음을 확인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유전자 감식을 거쳐 김 씨는 20일 아들을 찾았다는 최종 통보를 받았다.
김 씨는 8년이 지난 22일 마침내 아들을 만난 뒤 “항상 죄책감에 시달리고 한으로 남아 있었는데 이제는 죽어도 여한이 없다”며 눈물을 흘렸다.
신진우 기자 nicesh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