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도 또?’ ‘왜 하필 이런 타이밍에?’라는 생각이 든다. 한국인이 과거사나 영토문제에 얼마나 둔감해져 있는가를 시험하려 한다든지, 반일감정이 희석되었나 확인하려는 것이라면 치기어린 행동에 불과하다. 독도 문제는 앙금이라기보다 지뢰에 가깝다. 밟아서 터지나 안 터지나 시험해 보지 않아도, 지난 수년간 우리는 그 폭발성을 충분히 경험했다.
독도 문제의 공방은 일본에도 소탐대실(小貪大失)이다. 독도의 쟁점화라는 작은 이익을 얻고, 한일협력이라는 큰 명제를 잃는다면 무슨 소용이 있는가? 관료이기주의로 보면 득(得)일지 모르지만, 전략적으로는 실(失)이 크다. 일본 문부성이 이런 맥락을 전혀 모르진 않을진대, 혹시 우리가 모르는 일본 정부의 치밀한 계산과 전략이 깔려 있는 것일까?
‘독도’는 앙금이 아니라 지뢰다
이명박 대통령의 인기가 하향세이니 영토 문제를 일으켜 인기를 회복시켜 주려고 한 일은 아닐 것이다. 설사 그랬더라도 ‘노 생큐’다. 아마도 일본 문부성은 3월 말 교과서 지도요령에 ‘독도는 일본땅’이라고 넣으려고 했는데 한일 정상회담이 예정돼 시기를 늦추고 지도요령보다 한 단계 낮은 지도요령 해설서에 지침을 넣어 영향을 최소화하려고 했다고 변명할 것이다.
그렇다면 살짝 때를 피한 후 자기들의 어젠다를 야금야금 관철시키려는 얄팍한 수에 불과하다. 행여 27일부터 중국을 방문하는 이명박 대통령에게 일본의 존재를 다시 한 번 부각하고자 했다면, 전략적 실수다. 한국과 중국이 독도의 예를 들어 일본경계론을 얘기하면 일본에 도움이 되는가?
이도 저도 아니고, 일본 문부성이 전략적 고려 없이 꿋꿋하게 자기 할 일을 했다고 치자. 외무성도 이에 대해 질끈 눈을 감았을 가능성도 있다. 그렇다면 한국이 실효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독도의 현실을 일본이 원하는 대로 바꿀 수 있는 비책이 있는가?
만약 일본이 무력행사를 통해 독도를 침탈할 수 있다면 가능할지도 모른다. 설마 일본이 그런 생각까지야 안 하겠지만, 일본이 생각만큼 간단하게 군사적으로 독도를 손에 넣을 수는 없을 것이다. 독도를 침탈하려고 시도하면 일본은 한국이라는 친구를 영원히 잃게 될 것이고, 동아시아에서 다시 침략국이라는 낙인이 찍힐 것이다. 한국과 일본의 동맹국인 미국이 일본의 일방적 군사 행동을 용인할지도 큰 의문이다.
그렇다면 국제사법재판소에 독도 문제를 가져가 현상을 변경해 보려는 명분축적용인가? 하지만 영토를 실효지배하고 있는 나라가 국제재판소 이관을 수용한 전례는 없다. 일본도 자신이 실효지배하고 있는 센카쿠열도를 국제재판소에 가져가지 않고 있다. 한국이 질까봐 무서워서 안 가는 게 아니다. 독도를 국제분쟁지역으로 삼을 경우, 한일관계에 관한 한 원상회복을 포기한 각박한 외교전을 각오해야 하기 때문이다.
한국의 실효지배라는 현실을 암묵적으로 인정하고 정책적 조치를 취하지 않았던 일본의 선배관료들은 애국심이 없어서가 아니라 한일관계가 중요함을 알았기 때문이다. 천번 만번 양보해서 국제재판소에 갔다고 치자. 독도를 섬이 아닌 암석이라고 간주하고 울릉도와 오키 섬의 중간선을 그으면 독도는 중간선으로부터 한국 쪽에 들어온다. 일본 정치지도자들은 이 결과를 수용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되묻고 싶다.
과잉반응은 日우익 돕는 것
일본이 자극을 한다고 해서 한국이 일희일비할 필요는 없다. 독도를 우리가 실효지배하고 있다는 자신감을 갖고 냉정한 판단을 내리면 된다. 우리가 만약 과잉대응하면 기뻐하는 것은 일본의 우익이요, 이를 쟁점화하려는 세력들뿐이다. 일본에는 갈등의 조장보다는 협력의 습관화를 통한 호혜적 협력관계 구축이 양국의 이익에 합치한다는 것을 주지시킬 필요가 있다.
박철희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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