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육정수]김정일, 6월의 선택

  • 입력 2008년 5월 29일 03시 00분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오리다/영변에 약산 진달래꽃/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오리다’ 김소월의 시 ‘진달래꽃’에 나오듯이 평안북도 영변은 원래 진달래꽃으로 유명했다. 그곳 실향민들은 이른 봄 약산의 검은 바위 사이사이를 수놓는 진달래꽃을 떠올리며 망향의 한(恨)을 달랜다.

이번 주 초, 총련 기관지 조선신보는 영변을 비단의 명산지로 소개했다. 10만 명이 펼치는 북한 집단체조 ‘아리랑’에도 8월부터 ‘영변의 비단 처녀’라는 새 작품을 끼워 넣기로 했다고 한다. ‘조선노동당의 인민생활 제일주의 방침을 예술적 화폭에 담는다’는 것이다. ‘핵시설의 대명사’로 통하던 영변의 이미지를 희석시키려는 의도로 보인다.

그럼에도 영변은 1994년 1차 북핵 위기 및 김일성 사망 이후 수백만 명이 굶어죽은 ‘고난의 행군’ 이래 북한 주민들의 민생을 도탄에 빠뜨린 상징이다. 핵개발에만 총력을 기울인 현장이기 때문이다. 올해도 북의 식량은 120만 t이나 모자라 수십만 명의 아사자(餓死者)가 나올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김 부자(父子)가 대를 이어 저지른 핵개발 만행의 결과가 너무나 닮았다.

1994년 6월, 필자는 미국을 방문 중이었다. 마침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의 중재로 김영삼-김일성 남북정상회담 일정이 다음 달로 잡힌 때였다. 김일성의 급사(急死)로 정상회담은 무산됐지만 그 전후의 한반도 상황은 일촉즉발이었다. 미국의 일부 여론지도층은 영변 핵시설을 폭격해야 한다는 강경론을 펴기도 했다.

당시 외교 및 군사 전문가들과의 토론에서 몇몇 참석자가 심문(審問) 같은 질문을 던졌다. “만약 북의 상황이 급변해 주민들이 휴전선이나 바다로 대거 몰려 내려온다면 한국은 어떻게 할 것인가.” “총으로 쏴서 막을 것인가, 인도적 차원에서 모두 받아들일 것인가.” 쉽게 대답할 수 없어 우물쭈물 넘겼던 기억이 생생하다. 실제로 그 후 남쪽을 향한 북의 ‘보트 피플’ 대열은 간단없이 이어졌다.

꼭 14년 만에, 공교롭게도 6월이 북한의 진로에 다시 분수령으로 등장하고 있다. 최근 북은 영변 핵시설 운영 자료를 미국에 건네주고 원자로 냉각탑도 공개 파괴하겠다고 약속했다. 베이징을 방문 중인 이명박 대통령도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과의 정상회담에서 이 문제를 얘기했다. 동시에 김계관과 크리스토퍼 힐 북-미 6자회담 대표도 베이징에서 핵 신고 및 6자회담 재개 문제를 협의하고 있다.

북한 당국이 진실성만 보인다면 주민들을 살릴 길이 활짝 열릴 것이다. 김정일의 마음에 달렸다. 6자회담 재개, 핵 신고서 제출, 냉각탑 파괴에 이어 6자 외교장관 회담까지 6월에 반드시 성사시켜 국제사회의 따뜻한 손길을 붙잡아야 한다. 그러면 영변도 진달래꽃과 비단의 명성을 되찾을 것이다.

며칠 전의 난데없는 김정일 유고설(有故說)은 건강문제와 후계체제 등을 둘러싼 북한 정권의 급변 가능성도 보여준다. 김정일이 자연사(自然死) 기회마저 잃을지도 모른다. 어떤 형태든 북의 급변사태는 고스란히 우리의 짐이다. 1990년 베를린 장벽의 갑작스러운 붕괴와 독일 통일의 후유증은 남의 일이 아니다. 북한 권력의 공백을 초래할 ‘김정일 최후의 날’에도 대비해야 한다.

육정수 논설위원 sooy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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