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는 것이라고는 군용도로 좌우에 늘어선 푸른 잡목뿐이었고, 들리는 것이라고는 얽히고설킨 칡넝쿨이 가끔씩 트럭 덮개를 스치는 소리뿐이었다.
긴장과 대치의 상징이었던 JSA
긴장 속에 시작한 자대(自隊)생활도 어느 정도 익숙해질 무렵 사단사령부로 파견명령이 났다. 사단 관할에는 판문점과 공동경비구역(JSA), 제3땅굴, 도라산OP(관측소) 등이 있었다. 작전서기병이었던 까닭에 하루에도 몇 번씩 이들 이름을 듣거나 말하거나 쓰면서 생활했다. 이들은 내 군대생활의 키워드였다.
며칠 전 일본 언론인을 안내해 JSA와 판문점을 둘러볼 기회가 있었다. 통일대교 앞에서 ‘천하제일 전진부대’라는 글씨를 보며 이등병 때만큼은 아니지만 약간의 긴장감을 느꼈다. ‘공동경비구역 JSA’라는 영화도 떠올랐다. 영화는 픽션이다. 그러나 남과 북의 최전방 GP(초소)에서 근무하는 양측 사병들이 북측 GP에서 만나 ‘회식’까지 한 사건 때문에 사단사령부가 발칵 뒤집혔던 기억을 갖고 있는 나에게 영화 ‘JSA’는 픽션이 아니었다. JSA는 그만큼 긴장해야 하는 곳이었다.
그러나 이번에 가본 JSA에선 군인보다 민간인이 더 많이 눈에 띄었다. 미군과 터키군 참전용사들이 있었고 가족과 함께 온 단체관광객들로 붐볐다. 책상 위로 군사분계선이 지나간다고 해서 유명한 군사정전위원회 회의실로 들어가려면 한참을 기다려야 했다.
약간 높은 곳의 초소에서는 멀리 개성공단이 보였다. 개성 하면 개성방송국이 떠오른다. 또렷하진 않았지만 내무반 TV에서는 개성방송국의 영상이 잡혔다. 그러나 봐서는 안 되는 방송이었다. 그런 개성에 지금은 한국 기업이 들어가 있고, 관광객도 오간다.
제3땅굴에 들어가 본 것은 발견(1978년)된 지 2년밖에 안 됐을 때다. 우리 군이 들어갈 수 있는 마지막 지점까지 가보니 흙더미로 대충 막아 놓고 그 앞에 초병이 서 있었다. 지금까지 뇌리에 남아 있는 것은 초병의 오른쪽 위에 걸려 있던 새장이었다. “이걸 왜 걸어 놓았느냐”고 묻자 “북한군이 이쪽으로 독가스를 흘려보낼지도 모른다. 새는 예민해서 이상동향을 금방 탐지할 수 있다”고 대답했다. 섬뜩한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이곳도 지금은 안보관광 코스로 각광을 받고 있다.
도라산OP도 마찬가지다. 이곳은 북한군의 동향을 가장 잘 관찰할 수 있는 최북단의 군사 ‘관측소’였다. 그러나 지금은 ‘전망대’로 바뀌고, 근처에 도라산역까지 생기면서 민간인들도 쉽게 접근할 수 있게 됐다.
그러고 보니 비밀스러웠던 내 군대생활의 키워드는 모두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갈 수 있는 곳으로 바뀌었다. 그렇다고 섭섭해할 것도 없을 듯하다. ‘민간인’인 나와는 달리 현역 장병들은 여전히 애국심과 충성심으로 불침번을 서고 있을 테고, 북한과 체제 대결을 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우리의 국력이 커졌다는 뜻이기도 하니까.
개방한 만큼 남북은 가까워졌는지
돌아오는 길에 끝없이 이어지는 임진강 변의 철책선이 눈에 들어왔다. JSA를 넘어 북한 땅 개성까지 오가면서도 막상 우리 곁에 있는 철책은 걷어낼 수 없다는 사실에 줄어든 듯하면서도 줄어들지 않은 남과 북의 거리를 생각하게 된다.
JSA를 둘러볼 때 ‘돌아오지 않는 다리’ 앞에 서 있는 관광버스 3대가 눈에 들어왔다. 보통은 관광버스가 그곳까지는 가지 않는다고 한다. 이유를 물어보니 미국의 한 참전 용사가 “북한에서 포로가 됐다가 저 다리를 건너 돌아왔다. 한번 가까이 가보고 싶다”고 했다는 것이다. 나처럼 평범했던 사병에게도 감회가 새로운데 사선을 넘나들었을 그가 55년 만에 JSA를 다시 찾은 기분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심규선 편집국 부국장 kssh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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