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구자룡]‘軍수송기, 韓 허용-日 불허’ 중국의 속내

  • 입력 2008년 6월 2일 03시 01분


중국 영화 ‘귀신(鬼子)이 온다’를 보면 중국이 20세기 초반 일본에 당한 굴욕과 상처가 그대로 드러난다. 중국인을 그야말로 ‘짐승’ 취급하는 장면이 곳곳에 나온다. 언제부턴가 중국에서는 ‘구이쯔(鬼子·귀신)’라는 일반명사가 부정적인 의미의 일본인을 지칭하는 말로도 쓰인다.

이번 쓰촨(四川) 성 대지진 참사 구호 물품 전달 과정에서 일본 자위대 수송기의 중국 입국이 무산되는 것을 보면서 이 영화가 다시 생각났다. 일본이 과거 중국인들의 마음에 안긴 상처는 이 영화만큼이나 쉽게 지워지지 못했나 보다.

중국 정부는 지진 발생 후 국제사회의 구조 및 의료 지원을 거절하다가 일본의 구호를 가장 먼저 받아들였다. 일본과의 관계개선을 위한 포석이라는 해석도 나왔다.

특히 지난달 28일 ‘일본 자위대 수송기가 구호 물품을 싣고 중국에 와도 된다’고 중국 측이 밝히자 이런 관측은 더욱 힘을 얻었다. 하지만 결국 이는 성사되지 않았다.

중국 내에서 높아지는 반발을 고려해 자위대 수송기 파견을 유보한 일본으로서는 뒷맛이 씁쓸했을 것이다.

중국 지도부가 ‘재난 외교’를 통해 양국 간 관계 개선 속도를 높여 보려 했지만 뿌리 깊은 반일 감정을 떨치기는 역시 시기상조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 이명박 대통령이 쓰촨 지진 피해 지역을 방문한 지난달 30일 한국 군용기가 지원 물품을 싣고 쓰촨 공항에 내렸다. ‘한국 군용기의 첫 중국 입국’이었지만 중국 내에서 어떤 반발이 있다는 말을 듣지 못했다.

지난달 27일 이 대통령과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이 만나 한중 관계를 ‘전면적 협력 동반자 관계’에서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로 격상하면서 군사 안보적인 의미에는 큰 비중을 두지 않았다. 그러나 불과 3일 만에 ‘전략적 관계’의 성과가 나타난 듯도 하다.

중국이 한국과 일본의 군용기 입국 문제를 달리 처리한 이유가 무엇인지는 알지 못한다. 다만 적어도 중국이 일본과 한국을 대하는 정서적 거리감에 큰 차이가 있는 것만은 분명히 확인할 수 있었다. 일본에는 유감스럽겠지만 이는 한중 관계 개선이나 발전에 큰 자산일 수 있다.

이를 토대로 진정한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를 실현하려면 양국 정부와 정치인은 물론 국민의 상호이해와 협력이 절실하다는 생각이다.

구자룡 베이징 특파원 bon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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