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GDP를 계산하면서 빠진 서비스업과 ‘지하경제’의 산출물을 반영하기 위한 것”이라는 설명이었다. 밀거래 매춘 돈세탁과 같은 불법 활동의 일부가 새로 GDP에 포함됐다. 몇몇 외신은 “그리스가 성장률을 높이려고 매춘 산업을 GDP에 넣었다”고 비판했다.
당시 이 뉴스를 읽으며 “GDP를 늘리는 데 이런 방법도 있구나” 하며 무릎을 쳤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꼭 다른 나라 일만도 아니다.
서울 은평구에서 정모 씨가 운영하는 음식점을 찾는 고객들은 2000년에 20% 정도만 신용카드로 결제했다. 매출의 80∼90%는 세무서에 신고하지 않고 세금을 떼어먹을 수 있었다.
하지만 신용카드 이용이 늘면서 요즘 이 가게 매출은 80% 이상 세무 당국에 노출된다. 80%와 20%의 차이만큼이 지하경제가 줄고 GDP가 늘어난 부분이다.
아직 부족하다는 비판이 많지만 한국은 역사상 가장 빨리 자영업자의 지하경제(미신고 소득)를 GDP에 잡히는 공식경제로 흡수한 나라일 가능성이 높다. 지난 정부에서 신용카드 사용은 급증했다. 2005년 현금영수증 제도도 도입돼 이제 웬만한 현금거래까지 파악된다.
세원 투명성을 높인 건 잘한 일이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성장률에는 다소 ‘거품’이 끼었다는 데 많은 경제학자가 동의한다. 노무현 정부 5년간 평균 성장률이 4.4%로 높지 않았을 뿐 아니라 국민이 느낀 체감경기가 그보다 나빴던 데에는 이런 이유도 있었다. 통계에는 안 잡혀도 호주머니를 채워 주던 쌈짓돈이 줄어 생활이 팍팍해진 것이다.
그동안 지난 정부는 성장률에서 지하경제 축소의 프리미엄을 누렸다. 신용카드 사용 등이 이미 충분히 늘어난 이명박 정부에서는 덕 보길 기대하기 힘든 부분이다.
달러 표시 GDP를 늘리는 데 효과가 입증된 수단이 하나 더 있다. 바로 환율이다. 지난 정부에서 한국 경제의 실력은 별로 나아지지 않았는데도 원화 가치는 계속 상승(원-달러 환율은 하락)했다. 수출기업은 힘겨웠지만 1인당 국민소득은 마지막 해에 2만 달러를 넘어섰다.
반면에 새 정부는 들어서자마자 수출로 성장률을 높이고 경상수지 적자를 줄이려고 원화 가치를 낮췄다. 달러표시 국민소득을 늘리는 데는 좋지 않지만 나름대로 정공법을 쓴 셈이다.
하지만 때가 안 좋았고 바뀐 경제 환경에 잘 맞지 않았다. 고유가와 맞물려 낮은 원화 가치는 물가를 끌어올려 정치적 부담까지 줬다. 결국 최근 환율정책의 방향을 틀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수출에 부담을 줄 정도로 원화 가치를 크게 높이기도 쉽지 않다.
결국 새 정부는 과거에 효력이 있었던 변칙적 수단으로 GDP를 높일 수 없게 됐다. 이제 시간을 길게 잡고 기업 친화적 환경을 만들어 투자가 늘길 기다리는 방법만 남았다.
그리고 그게 바른 길이다. 성장률 공약은 잊는 게 낫겠다. 국민이 원하는 건 체질개선 없이 강장제로 키운 성장률이 아니라 생활에서 확인할 수 있는 진짜 성장이니까.
박중현 경제부 차장 sanjuc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