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인’(사실은 혼혈이지만)과 ‘여성’의 대결로 세계적 관심을 끈 승부에서 힐러리가 끝내 분루를 삼키게 된 데 대해선 후보의 자질과 비전, 선거 전략 등에 걸쳐 다양한 분석이 나온다. 그러나 크게 보면 미국 사회가 아직 ‘최초의 여성 대통령’을 수용할 태세가 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CNN의 4월 여론조사에선 흑인 대통령을 받아들일 수 있다는 응답이 76%, 여성 대통령을 받아들일 수 있다는 응답이 63%였다. ‘흑인 남성이 백인 여성보다는 대통령으로 낫다’는 유권자들의 인식이 그대로 투표 결과로 이어졌다. 실제로 오바마가 승리한 주 중 메인 버몬트 아이오와 노스다코타 아이다호 와이오밍 등은 백인 인구의 비율이 90%를 넘는다.
미국에서 여성이 전국적으로 처음 참정권을 행사한 것은 1920년 11월 2일 워런 하딩 대통령을 뽑은 대선 때였다. 그 전엔 여성에게 참정권을 주면 금주(禁酒)법을 제정할 것이라거나 사회질서가 무너질 것이라는 등의 황당한 편견이 많았다.
그로부터 88년이 흐른 지금 제110대 의회(2007∼2009년)엔 하원에 71명, 상원에 16명 등 모두 87명의 여성 의원이 의정활동을 하고 있다. 이들을 포함한 역대 여성 상하원 의원은 245명이고, 전현직 여성 주지사도 30명이나 된다. 1984년엔 민주당 제럴딘 페라로 하원의원이 첫 여성 부통령 후보로 선출되기도 했다.
하지만 ‘천하의 힐러리’가 주저앉는 것을 보면 여성이 국정의 최고책임자가 되는 것을 가로막는 현실의 ‘성벽(性壁)’은 여전히 높고 견고하다.
힐러리가 누군가. 대학시절 그의 첫사랑이었던 데이비드 루퍼트는 두 사람의 관계가 깨진 뒤 이런 말을 했다. “나는 미국 대통령이 되겠다는 불타는 야망을 결코 표현한 적이 없다. 힐러리가 파트너에게 바랐던 점은 그런 야망이었다.”(Gail Sheehy, ‘Hillary's Choice’, Random House, 1999). 힐러리는 루퍼트 대신 그의 조지타운대 1년 선배인 빌 클린턴을 예일대 로스쿨 시절에 만나 결혼한 뒤 퍼스트레이디로서, 상원의원으로서 줄곧 현실 정치를 추구해왔다. 그의 능력? 앞으로 힐러리만 한 여성 대통령감이 나오기는 한동안 어려울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평가다.
그런 점에서 힐러리의 패배는 첫 여성 대통령 탄생을 통한 여권(女權) 신장을 기대했던 사람들에겐 아쉬운 대목이다. 그러나 어느 나라든 대통령은 본인의 능력과 노력만으로 되는 게 아니다. 시대적 필요성과 정치상황, 시운 등이 맞아떨어져야만 한다.
대선 후보가 못 됐다고 힐러리의 시대가 끝난 건 아니다. 72세의 매케인도 2000년 공화당 경선에서 조지 W 부시에게 패한 뒤 8년 만에 후보가 돼 정치인생의 정점에 올랐다.
대통령의 꿈을 일단 접어야 할 힐러리가 정치인으로서 어떤 길을 걸을지 관심이 쏠린다. 61세인 그의 정치행보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한기흥 국제부장 eligiu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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