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같은 대안교과서의 기본 줄거리는 현행 교과서와 많이 다르다. 현행 교과서는 자유, 인권 등의 가치는 원래 우리 역사에 있었거나 생겨나고 있던 것들로서 제국주의의 침입으로 그 발전이 억눌렸다고 본다. 대한민국을 세움에 공로가 컸던 정치세력에 대해서도 대체로 같은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역사관이 많이 달라서 그런지, 대안교과서는 출간 이후 지금까지 거의 매일 비방의 대상이 되어 왔다. 시해당하기 이전의 민비를 ‘민왕후’라 한 것은 그녀를 존숭하기 위한 의도였다. 그런데도 명성황후라고 하지 않았다고 한국을 대표하는 중앙 언론지의 사설까지 비난을 퍼부었다. 그 남편이 아직 왕인데 어찌 그 부인을 황후라고 칭할 수 있는가. 대안교과서의 필자 가운데 전문적인 역사학자가 한 사람도 없다는 비방은 그들의 역사학에 대한 이해가 어떤 수준인지를 적나라하게 폭로하고 있을 뿐이다. 근·현대사의 역사학은 정치사, 경제사, 사회사, 문화사 등 여러 분야사의 총합으로 성립한다. 개별 분야사를 초월한 역사학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다.
대안교과서는 1948년 제주도4·3사건을 ‘좌파세력의 반란’으로 범주화하였다. 그것은 현행 교과서가 4·3사건을 두고 단독정부 수립의 반대와 미군의 철수를 위해 제주도의 공산주의자와 일부 주민이 무장봉기하여 관공서와 파출소를 습격했다고 쓰고 있음을 참고한 것이었다. 그 진압 과정에서 숱한 인명 피해가 있었음에 대해선 오히려 현행 교과서 이상으로 자세하게 소개하였다. 그런데 제주4·3연구소는 우리가 역사를 왜곡했다고 비난하였다. 뒤이어 북한의 노동신문과 중앙방송은 우리를 용서 못할 범죄자로 단정하면서 4·3사건은 미제와 그 앞잡이에 대한 대중의 정의로운 무장항쟁이었다고 다시 정의해 주었다.
대안교과서가 식민사관으로 돌아가 일제의 지배를 미화하고 있다는 비난이 연구자의 입에서까지 나오고 있음은 참으로 서글픈 현실이다. 우리는 그 시대가 억눌리고 빼앗기고 멸시당한 노예의 역사만이 아니었음을 밝히고자 했다. 그 시대에 억압과 차별의 물결을 타고 서양 기원의 근대문명이 흘러들어 왔다. 우리의 선인들은 그 근대문명을 학습하고 실천하였다. 장차 독립국가가 세워질 때 발휘될 ‘사회적 능력’을 두텁게 축장하였다. 이것이 우리가 새롭게 그리는 그 시대의 주체적인 역사상이다. 따지고 보면 세계의 역사학계가 공유하는 상식이기도 하다. 어째서 그런 이야기가 이 땅에서는 ‘식민지 미화론’이 되는가.
보도에 따르면 한국사연구회와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등 13개 단체가 우리의 책을 ‘위험한 교과서’로 비판하기 위한 학술토론회를 연다고 한다.
그런데 그 토론회에 우리 연구자 12명 중 한 명이라도 초청했으면 건설적인 토론이 되었을 텐데 아쉽다.
이영훈 교과서포럼 공동대표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