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천광암]100년 기업은 家訓이 달랐다

  • 입력 2008년 6월 5일 03시 03분


일본의 산업혁명에 사상적 원동력을 제공했다는 이시다 바이간(石田梅巖)은 ‘장사의 근본은 행상(行商)에 있다’는 말을 남겼다. 일본 양대 유통기업 중 한 곳인 이온그룹의 뿌리가 250년 전 미에(三重) 현의 괴나리봇짐 행상이었다는 사실만 보더라도 일리 있는 이야기다.

오카다 다쿠야(岡田卓也) 이온 명예회장은 작은 동네 포목상을 연 매출 50조 원이 넘는 굴지의 대기업으로 키운 비결로 다음과 같은 가훈(家訓)을 꼽은 적이 있다.

“대들보에 바퀴를 달아라.”

대들보는 집 전체를 떠받치는 가장 중요한 기둥이다. 무슨 일이 있어도 움직여서는 안 된다. 하지만 변화무쌍한 비즈니스세계에서 살아남으려면 대들보까지도 옮길 수 있는 유연성이 있어야 한다.

조상들이 발이 부르트도록 전국을 떠돌며 체득한 이런 이치를 오카다 가문은 지금도 충실히 지키고 있다. 이온그룹은 지난 한 해 동안 86곳에 새 점포를 열고 기존 점포 46곳을 폐쇄했다. 가훈의 가르침대로 새 길목과 장터를 찾아 끊임없이 ‘대들보’를 옮기고 있는 것이다.

세계에서 장수(長壽)기업이 가장 많은 일본에는 이온처럼 가훈을 소중히 떠받드는 기업이 많다. 신용조사업체인 데이코쿠데이터뱅크가 1912년 이전 창업한 일본 기업 4000개사를 대상(814개사 응답)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약 80%가 가훈이나 사훈을 갖고 있다고 답했다. 이 중에는 무릎을 탁 치게 하는 내용도 적지 않다.

‘병풍과 사업은 너무 펼치면 쓰러진다.’

창업 283주년을 맞은 한 철물상의 가훈이다. 일본에서 한때 다각화 경영의 대표적 성공모델로 꼽혔던 가네보가 망한 것은 이런 이치를 간과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지만 다각화나 사업 확대가 기업의 장수에 반드시 해롭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악기와 오토바이로 유명한 야마하는 문어발식으로 사업을 펼쳐 세계적인 대기업이 됐다.

확장이냐 수성이냐, 한우물이냐 다각화냐는 시대환경과 경영자의 개성에 따라 선택할 문제이지 절대적인 옳고 그름이 있는 것은 아니다.

최근 일본에서는 센바킷초라는 고급 요정이 손님이 물린 상의 음식을 다른 손님에게 내놓았다가 들통 나 결국 문을 닫았다. 센바킷초의 가훈도 ‘병풍과 사업은 너무 펼치지 말라’였다. 이 점을 봐도 기업의 사활에 관련된 본질적인 문제는 따로 있는 듯하다.

1790년 창업한 후쿠시마(福島) 현에 있는 한 청주제조업체의 가훈은 다음과 같다.

‘재산은 셋으로 쪼개서 관리하라.’

재산을 부동산, 주식, 예금에 분산 투자하라는 현대 투자론의 포트폴리오이론과 비슷해 보이지만 구체적인 내용은 다르다. 이 기업의 가훈은 3분의 1은 부동산, 또 다른 3분의 1은 주식 예금 현금에,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3분의 1을 ‘신용’에 투자하라고 가르친다.

‘신용이 장수의 초석’이라고 믿는 기업은 이곳뿐이 아니다. 데이코쿠데이터뱅크의 조사에서 경영에서 가장 중시하는 것을 한자(漢字) 1자로 쓰라는 주문에 압도적으로 많은 장수기업이 ‘믿을 신(信)’자를 꼽았다.

본보는 지난해 10월부터 일본의 100년 기업 중 30곳을 엄선해 매주 1곳씩 탐방 기사를 실어 왔다. 이 중에는 시세이도, 야마하, 미키모토, 세이코 등 세계적인 기업들도 포함돼 있다. 아직 최종회(이온그룹 편)가 남아 있지만 시리즈 전체의 결론은 본란을 통해 대신하고자 한다.

‘상품과 서비스를 파는 기업은 흥하기도 하고 망하기도 한다. 하지만 믿음을 파는 기업은 영속한다.’

천광암 도쿄 특파원 i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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