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김상영]치명적 리스크에 대하여

  • 입력 2008년 6월 5일 03시 03분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개를 둘러싼 회오리가 한국사회를 휩쓸고 있다. 빗속에서도 촛불시위는 계속되고 서울시청에서 광화문 네거리에 이르는 태평로는 매일 밤 시위대로 뒤덮인다. 출범 100일을 맞은 정부는 ‘동의하기 어려운 당황스러운 상황’(류우익 대통령실장)을 풀어낼 해법 마련에 골몰하고 있다. 국민도 정부도 온통 쇠고기 얘기뿐이다.

쇠고기보다 무서운 자원위기

하지만 이미 바짝 다가온 위험에 대해서는 둔감하다. 누구나 이 위험을 알지만 불확실성에 막연한 희망을 버무려 무시한다. 단편적으로는 심각성을 인식하더라도 총체적으로 어느 정도의 파장을 몰고 올지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는다.

지금 전 세계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자원위기는 1970년대 두 차례 겪었던 오일쇼크와는 차원이 다르다. 당시 오일쇼크는 산유국들이 강대국 다국적 석유회사들의 시장지배력을 깨기 위해 인위적으로 공급을 줄여 일어났다. 정치적 이유가 사라진 뒤 원유 공급은 다시 늘었고 값도 떨어졌다. 지금은 값이 엄청 올라도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한다. 향후 유가 전망도 어둡다는 뜻이다. 배럴당 200달러로 오를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왔다.

원유뿐만이 아니다. 광물과 곡물 값도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2002년과 비교해 연평균 원유가격은 3.9배, 금속광물은 4.7배, 곡물은 2.6배로 올랐다. 이렇게 오른 돈을 주고도 물량 확보가 쉽지 않다. 달러가치 하락과 투기자본의 가세가 이유로 거론되지만 근본적으로는 앞으로도 공급이 모자랄 것이라는 불안감에 기인한다. 글로벌 차원의 공급난이 심화되면 자원의 대외의존도가 큰 한국은 엄청난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단순히 자원부족 문제로만 끝나지 않는다. 수요가 늘면 값이 오르고 공급이 증가해 가격을 안정시키는 시장원리가 각종 자원에 적용되지 않는다면 우리의 삶 자체가 바뀔지도 모른다. 당분간은 각국이 자원 확보에 총력을 기울이겠지만 장기적으로는 석유에 기반한 문명 자체에 거대한 변화가 일어날 수도 있다. 벌써부터 풍요의 시대는 갔다거나 이제 허리띠를 졸라매고 절약하는 수밖에 없다는 외신보도가 잇따르고 있다.

세계 각국은 인플레이션 조짐으로 초비상이다. 물가상승은 실질소득을 감소시켜 씀씀이를 줄이고 경기를 밑으로 끌어당긴다. 원자재값 상승으로 제조업체는 수익성이 나빠지고 투자여력이 줄어 역시 경기 하강요인으로 작용한다. 최근 5년간 세계경제의 평균성장률 4%는 꿈속의 숫자로 남을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이 힘을 얻고 있다. 어쩌면 다시는 오지 않을 풍요의 시기가 지금 지나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부(富)가 제조업 중심 국가에서 자원보유국으로 이동하는 현상도 이미 나타나고 있다. 우리가 수출하는 공산품은 기술발전과 경쟁심화로 가격이 떨어지는데 수입 원자재 값이 오르면 힘들여 벌어들인 소득이 자원보유국으로 빠져나간다. LG경제연구원은 작년 한 해에만 자원가격 상승으로 162억 달러, 올해에는 289억 달러가 해외로 빠져나갈 것으로 추정한다. 러시아 사우디아라비아 베네수엘라 인도네시아 같은 자원수출국의 성장률은 크게 높아졌다.

늦었지만 국가 장기대책 내놔야

방법은 세 가지다. 첫째 자원 확보, 둘째 절약, 셋째 대체에너지 개발이다. 어느 것 하나 민간 차원으로만 가능하지 않다. 국가 차원의 장기플랜을 만들고 노력을 기울여도 헤쳐나갈 수 있을지 자신할 수 없다. 뒤늦게 자원외교를 표방했지만 경쟁국에 비해 한참 늦었고, 절약은 자원을 많이 소비할 수밖에 없는 산업구조 재편을 수반해야 한다. 대체에너지 개발은 지금 투자해도 10년 후 성과를 장담할 수 없다. 그래도 지금이라도 시작해야 한다.

촛불시위로 나타난 민심은 존중돼야 한다. 행여 국민이 미국 쇠고기를 먹고 광우병에 걸리는 일이 있어서도 안 된다. 하지만 국가경영이 여기에서 끝날 수는 없다. 지금 소리 없이 다가온 치명적 리스크는 누가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

김상영 편집국 부국장 youngkim@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