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최원목]‘쇠고기’ 재협상 아닌 추가협상이 현실적

  • 입력 2008년 6월 11일 02시 58분


정부가 미국 측과 ‘30개월 이상 미국산 쇠고기의 수입을 막을 확실한 민간 자율규제 방안’을 협의 중이지만 거리로 나선 시민들과 야당의 ‘재협상’ 목소리는 잦아들지 않고 있다. 미국 측이 동의해 주지 않는다고 해도, 재협상은 이론적으로 가능하다. 우리 정부가 현재의 쇠고기 합의서를 파기하고, 일방적으로 재협상을 선언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얻을 것에 비해 치러야 할 비용과 후폭풍이 훨씬 크기에 재협상 선언을 하지 않는 게 차라리 낫다는 데 있다.

미국이 모든 월령 쇠고기의 완전 개방(국제수역사무국·OIE 기준)을 목표로 다른 나라와 협상을 진행하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가 요구하는 30개월 이상 쇠고기의 수출 금지 조항을 명문으로 수용할 리 만무하다. 더구나 이미 완전 개방에 합의한 협약을 일방적으로 파기당한 상태에서 말이다.

미국 측을 설득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대신 줘야 할 게 있어야 한다. 과거 한일어업협정 체결 당시 쌍끌이 재협상이 가능할 수 있었던 것은 쌍끌이 어업 쿼터를 추가로 얻어내는 대신 그보다 더 많은 가치를 지닌 복어 등의 쿼터를 일본 측에 제공해 일본 내의 반발을 무마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일방적으로 받을 것만 있는 쇠고기 재협상에서는 이런 방식의 이익의 교환이 불가능하다. 미국도 정치적 바람을 타는 대선 정국이어서, 쇠고기 재협상은 지지부진해질 것이고, 미국 내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론에 기름을 붓는 격이 될 가능성이 많다. 합의에 이르지 못한 채 우리가 월령 30개월 이상 쇠고기 수입을 막을 경우 미국이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할 수도 있다. 양자협정을 파기하고 OIE보다 엄격한 기준을 적용해 쇠고기 교역을 제한하고 있는 우리가 그 필요성을 과학적으로 입증해야 하는데, 이것이 어렵다는 점에서 결국 패소할 가능성이 크다. 그래도 30개월 이상의 쇠고기 수입을 막게 되면, 미국은 우리의 주력 수출품인 휴대전화와 철강·자동차 등에 보복관세를 부과할 수 있게 된다. 이런 무역 보복은 우리 측이 과학적 입증 책임을 다할 때까지 계속된다.

또한 앞으로 전개될 각종 협상에서 상대국은 한국 대표가 서명한 협정이라도 국내 정치적 이유로 파기당할 가능성을 사전에 고려할 것이다. 그 결과 처음부터 압박을 가해 과도한 양보를 한국 측으로부터 얻어내려 할 것이다. 그래야 나중에 재협상 국면에서 추가로 양보하더라도 자신이 애초에 원하던 수준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미 체결한 협정 내용이 잘못됐다고 해서 이에 대한 반발로 우리의 커다란 불이익으로 뻔히 돌아올 감정적인 해법을 추구한 결과가 초래하는 장기적인 부작용이다. 그래도 1000만 명, 아니 100만 명 중 한 사람의 생명을 광우병 위험으로부터 구하기 위해 이런 불이익을 감수해야 한다는 논리는 현실을 무시한 감성적 구호일 뿐이다. 재협상 선언을 통해 우리가 앞으로 입을 불이익이 결국 훨씬 더 많은 수의 국민과 그 가족의 경제적 생존권을 위협할 것이기 때문이다.

무능한 정부가 과거를 망쳤다고 해서 그에 대한 분풀이로 우리의 미래까지 망쳐버리는 선택을 하는 것은 10대 통상대국이 지향할 바가 아니다. 우리 역사상 유례가 없는 협정 파기에 이르지 않도록 ‘재협상’이 아닌 ‘추가협상’을 통해, 민간자율 수출입 규제 제도의 실효성을 확보하고 쇠고기 월령 표기를 의무화하는 등 기존 협정의 문제점을 최대한 보완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그러고 나서 정부의 협상 책임을 엄중히 물어, 이런 사태가 재발되지 않도록 만전을 기해야 할 것이다.

최원목 이화여대 법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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