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인 의지와 무관한 선의의 피해
얼마 전 이혜진 우예슬 양 납치 살해 사건 이후 희생자인 혜진 양의 어머니가 정부와 정치권에 아동 성폭력 사건의 처벌 조항을 ‘혜진 예슬법’으로 부르지 말아 달라고 요청했다. 그는 “희생된 아이들의 이름이 거론될 때마다 부모의 마음이 얼마나 아플지 헤아려 달라”고 호소했다. 법무부는 아동 성폭력 사건에 대한 강경 대응 여론이 높아지자 처벌 조항을 대폭 강화한 법개정안을 만들고 해당 조항을 ‘혜진 예슬법’이라고 명명했었다. 법무부는 결국 혜진 양 어머니의 요구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앞서 1990년대 말 이른바 ‘옷 로비 의혹 사건’ 당시 국회 법사위 청문회에서도 청문회에 출석한 앙드레 김을 향해 국회의원들이 사건의 본질과는 아무 상관도 없는 그의 본명 ‘김봉남’을 여러 차례 거론하며 그를 모욕한 적이 있었다.
이처럼 부적합한 조어(造語)와 용어의 구사 및 남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는 것은 뜻하지 않은 피해를 가져오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이명박 정부 출범 후 줄곧 거론되고 있는 ‘강부자’ ‘고소영’에 대한 정치권과 언론의 용어 사용에는 분명 문제가 있다. 이명박 정부의 첫 내각 인사와 재산 공개 후 야당과 언론은 일부 재산가들을 비꼬며 ‘강부자’ ‘고소영’을 수없이 거론했다. ‘강부자’는 ‘강남 땅 부자’ 또는 ‘강남 부자 자산가’를 가리키고, 고소영은 ‘고려대 소망교회 영남 인맥’을 의미하는 약어임을 삼척동자도 알고 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고소영 S라인’이란 말도 등장했다. 대통령 측근 그룹에 ‘고소영’ 외에도 서울(Seoul)시청 출신이 많다는 의미다.
문제는 이 조어가 두 연기자를 희화화하고 자칫 부정적 이미지를 확산시킬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이다. 정치인의 후원금 모금을 엄격히 규제한 ‘오세훈법’, 반값 아파트법으로 알려진 ‘홍준표법’, 옛 소련의 핵탄두 폐기법안인 ‘넌-루거 법안(Nunn-Lugar legislation)’, ‘사베인스-옥슬리법(회계개혁법)’ 등 긍정적 의미에서의 이름 사용과 분명히 구분된다.
연예인 마구 대하는 풍토 없기를
강부자 선생이 누구인가. 반세기 가까이 팬들의 성원을 받아 왔고, 14대 국회의원을 지낸 중진 연기자다. 그런 분을 너 나 할 것 없이 그런 식으로 희화화하는 것은 분명 문제가 있다. 하지만 그는 대(大)연기자답게 자신의 이름이 그런 식으로 거론되는 것을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는 “사람들이 그런 뉴스를 보고 들을 때마다 내게 ‘요즘 떴네’ 한다”면서 “내 이름이 강부자인 게 잘못이지 뭐” 하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강남구 청담동에 28년 동안 살고 있긴 하지만 정작 강남에 땅 한 평 갖고 있지 않다”며 “할 수만 있다면 조금 고쳐서 얘기해 주면 좋겠다”고 우회적으로 아쉬움을 나타냈다.
고소영 씨와는 여러 경로를 통해 연락을 취했으나 본인과 연결이 되지 않았다. 매니저도 관련된 언급을 극구 사양했다. 연예인이 함부로 말해서도 안 되지만 사회가 연예인을 마구 대해서도 안 된다. 새 각료와 대통령수석비서관 인선에서도 그들의 이름이 다시 거론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오명철 전문기자 osca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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