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염희진]한류 위기 깨닫게 한 中드라마의 힘

  • 입력 2008년 6월 13일 02시 58분


일본 나가사키 현 하우스텐보스의 한 호텔에서 12일 막을 내린 동아시아 방송작가 콘퍼런스. 올해로 3회째를 맞은 이 행사는 한국 일본 중국 태국 등 7개국 60여 명의 작가가 자신의 드라마를 보여주며 상호 교류의 가능성을 타진하는 자리였다.

4일간 열린 이 행사에서 단연 주목받은 드라마는 중국의 ‘금혼(金婚)’이었다. 중국 작가 정샤오룽이 쓴 ‘금혼’은 남녀 주인공이 1956년 결혼해 2006년 금혼식을 맞기까지 결혼 생활 50년을 50회에 걸쳐 다뤘다. 이 드라마는 지난해 중국에서 방영돼 시청률 1위를 기록했고 이혼율을 낮추는 사회적 신드롬을 낳기도 했다.

이 드라마가 다룬 소재는 중년의 위기, 고부 갈등, 자녀 교육, 대화 단절, 가장의 사업 실패 등 가족 관계에서 흔히 등장하는 것이었다. 영상미도 한국 드라마에 비해 뒤떨어진다는 느낌을 주었다.

하지만 ‘금혼’은 스토리의 힘과 극적 완성도로 콘퍼런스에 참가한 한국 작가들에게 충격을 안겼다.

‘가을동화’의 오수연 작가는 “세련된 영상미가 부족해 1970년대 한국 드라마를 보는 듯하지만 심금을 울리는 이야기의 힘이 대단하다”며 “중국의 오랜 역사에서 우러나오는 서사문학의 힘이 작용한 듯하다”고 분석했다.

함께 자리한 한국 작가들은 중국 드라마는 오랜 역사를 통해 탄탄하게 숙성된 콘텐츠를 지니고 있어 무협물 등을 통해 다져진 영상미와 연출력이 발휘되면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출 것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진단은 특히 한류를 주도한 한국 드라마가 열악한 제작 환경, 상투적인 소재와 작위적인 설정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상황과 겹쳐지면서 한류를 이끌었던 작가들에게 ‘위기의식’을 고조시켰다.

‘주몽’의 최완규 작가는 “오랜만에 드라마 같은 드라마를 보며 눈물이 핑 돌았다”며 “앞으로 중국 시청자들에게 한류라는 이름으로 수출되는 한국 드라마가 얼마나 다가설 수 있을지 걱정된다”고 말했다.

‘금혼’이 아니라 국내 미드(미국 드라마) 열풍을 보더라도 ‘웰 메이드 드라마’가 주는 감동은 국경을 가리지 않는다. 그렇다면 요즘의 한국 드라마는 손님을 끌기 위해 이야기라는 천연 재료보다 자극적인 조미료를 너무 치고 있는 것은 아닐지…. 한국 드라마가 중국 드라마가 가져올 ‘화류(華流)’ 바람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기본을 다시 다져야 할 것 같다.

―나가사키에서

염희진 문화부 salth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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