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권순활]법치가 무너지면

  • 입력 2008년 6월 18일 02시 57분


아들을 전경으로 보낸 어느 신문 논설위원의 칼럼을 읽었다. 그는 시위 현장에 투입된 아들을 둔 아버지로서의 걱정과 함께 법과 질서, 그리고 그 상징인 ‘폴리스라인’이 짓밟히는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수도(首都) 서울의 거리는 하루가 멀다 하고 몸살을 앓았다. 출범한 지 100일을 갓 넘긴 합법정부를 향해 ‘정권 퇴진’ 주장이 난무했다. 어두운 열정에 휘둘린 일부 좌파는 경찰은 물론 자신들에게 동조하지 않는 집단이면 유무형의 폭력을 서슴지 않는다. 그러면서 ‘제2의 6월 항쟁’이라고 한다. 과연 그럴까?

그해 6월 나는 군복무를 마치고 복학한 대학 4학년, 속칭 ‘복사꽃’이었다. 하지만 정통성 없는 군사정권에 대한 염증이 절정에 달한 1987년의 시대적 상황은 3년간의 공백에서 돌아와 졸업이 임박한 ‘대학가 아저씨’를 연일 거리로 나서게 했다. ‘닥터 지바고’의 보리스 파스테르나크가 러시아 혁명 전야에 남긴 “앞으로 나같은 자유주의자는 견딜 수 없는 세상이 올 것을 예감한다. 그러나 차르 체제는 무너져야 한다”는 말이 가슴에 절절히 와 닿던 시절이었다.

그때도 운동권의 헤게모니는 NL이니 PD니 하는 극좌 계열이 잡았다. 하지만 6월 항쟁의 진정한 주역은 그들이 아니었다. 억압적 현실에 대한 객관적 공분(公憤)을 바탕으로 ‘호헌(護憲) 철폐’나 ‘직선제 쟁취’라는 자유민주주의를 갈망하는 각계각층의 보통사람들이었다. 그 시대를 체험한 사람이라면 민주화 투쟁에서 주요 신문, 특히 동아일보가 얼마나 큰 역할을 했는지도 안다.

한미 쇠고기 협상에서 이명박 정부의 판단과 일처리는 안이하고 미숙했다. 비판을 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민주적 선거를 거쳐 출범한 민간정부를 군사쿠데타로 집권한 독재정부와 동일시하면서 ‘정권 타도’를 주장하는 것을 어떻게 봐야 하나. 과잉진압 못지않게 야간에 도심의 차도를 점거하고 전·의경을 폭행하거나 시설을 파괴, 훼손한 일부 시위대의 잘못도 질타하는 것이 정상이다.

정부도 비겁했다. 정책 실패에 대한 책임과는 별도로 수도 한복판에서 벌어진 명백한 불법행위에 손을 놓다시피 했다. 일부 방송과 인터넷 등이 합리적 문제제기를 넘어 기초적 사실도 확인하지 않고 ‘광우병 위험’을 과장, 왜곡해 불안을 한껏 키웠는데도 제때 반박도 못했다. 노무현 정부에서 저 정도의 허위보도를 했다면 해당 언론사는 문을 닫았을지 모른다.

경제와 민생에도 법치는 중요하다. 사유재산권 보호, 계약 자유의 원칙과 함께 시장경제를 지탱하는 필수 전제조건이기 때문이다. 정통성 있는 정부조차 법적 한계를 일탈한 행위를 방치한다면 어느 기업이 투자를 하겠는가. 자기 재산과 생명을 언제 잃어버릴지 모르는 곳에 가치 있는 것을 지으려 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J D 데이비드슨의 ‘대변혁’) 그럴수록 중산층과 서민의 삶은 더 어려워진다.

일본에서 과격 운동권이 외면받기 시작한 결정적 계기는 1960년대 후반 도쿄대 야스다 강당 점거사건이었다. 일본사회는 이후 난동의 주역들이 평생 ‘사회적 주류(主流)’가 될 기회를 봉쇄함으로써 교훈을 삼게 했다. 이제 한국도 폭력 등 분명한 범법행위에는 엄하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 법치가 무너지면 경제 살리기도, 선진국 진입도 물 건너간다.

권순활 산업부장 shkw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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