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에 최대한 얻어낸 추가협상
민간업자의 자율규제는 내부 기한이 정해지기 마련이며, 기한 내에서도 상업적 유인이 있으면 소량이나마 자율규제를 우회해 30개월 이상 쇠고기를 수출입할 가능성이 있다. 이는 자율규약을 어기는 것이지만 조약 위반이나 불법은 아니다. 그렇기에 우리 정부가 30개월 이상 쇠고기의 반송조치를 취할 경우 업자들에 의해 법원에 제소돼 패소 판정을 받을 가능성도 있다.
정부도 이런 가능성을 시인하고, 지금부터는 장기적으로 수입될 여지가 있는 소량의 30개월 이상 쇠고기를 철저히 관리할 수 있는 국내 입법을 마련하는 일이 중요하다. 한우를 포함한 모든 쇠고기의 원산지 표기는 물론 월령 표기까지 의무화하게 되면, 30개월 이상 쇠고기가 포함된 제품을 원치 않는 국민이 소비하는 경우를 막을 수 있다. 아울러 이런 제품도 싼값에 구매하길 원하는 소수 국민의 권리도 함께 보호할 수 있다.
이제 국민의 눈높이를 현실세계에 맞추어야 할 때다. 상대국이 재협상에 동의하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협정을 파기하고 정부의 실력행사를 통해 30개월 이상 쇠고기를 100% 막을 것인가? 아니면 파국을 막기 위해 현재 합의된 수출자율규제 체제를 수용해 대부분의 30개월 이상 쇠고기를 막되, 혹시 모를 우회 행위는 국내 보완 입법을 통해 해결해 나갈 것인가?
이제 우리 국민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그동안의 정부 과오에 대한 격노의 심정으로는 전자의 선택을 하고 싶다. 그러나 합리적인 국민이라면 후자를 택할 것이다. 현 세대가 책임성 없이 힘으로 쇠고기협정을 파기하고 재협상 카드를 밀어붙이면, 역사상 최초로 양자협정 위반이라는 판도라 상자를 우리 스스로 열게 된다. 미국의 유형무형의 보복과 압력을 자초함은 물론, 앞으로 진행될 각종 대외 협상에서 상대국으로 하여금 국제법보다는 힘에 의해 문제를 해결하려 하는 빌미를 제공하게 된다.
그 결과 미래의 우리 자녀세대에 커다란 피해와 생존권의 위협이 발생하게 될 것이다. 정권이 졸속협상을 통해 우리의 과거에 오점을 남겼기에, 그만큼 우리의 미래가 소중하다. 현재의 국민은 물론 미래의 국민에게 폐가 되지 않도록 행동하고 선택해야 한다.
월령표기 의무화 입법 서둘러야
야당도 쇠고기협정의 내용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가축전염병예방법 개정을 통해 정부에 재협상 의무를 지우려는 무책임한 시도를 하지 말고, 한미 간 합의된 자율규제 체제를 보완할 수 있는 국내 입법을 서둘러야 할 때다. 고유가, 고환율, 고물가 시대를 헤쳐 나가야 할 역사적 운명을 안고 출범한 현 정권의 발목을 쇠고기 정국으로 묶어 광속(光速)의 시대에 소걸음질 치게 하는 것은 우리 스스로를 파멸시키는 길이다.
촛불집회의 진정한 의미는 국가의 앞날을 생각하고 자녀들의 생존권을 생각하는 미래지향성에 있다. 실정에 대한 단죄만을 위한 과거지향적인 행동은 민주주의의 승리가 아닌 인민재판 수준으로 머물게 할 것이다. 무리한 재협상 주장의 한계가 명확해지고 한미 간의 수용 가능한 타협안이 도출된 지금, 우리의 현재와 미래는 진정한 국민의 선택을 지켜보고 있다.
최원목 이화여대 법대 교수
구독
구독
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