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부총리제에 순기능이 있는 건 사실이다. 부총리를 정점으로 장관들이 역할을 분담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면 정부 차원의 통일적인 대응이 가능해진다. 중구난방(衆口難防)과 각개약진(各個躍進)에 따른 혼란을 피할 수 있는 것도 장점이다. 그러나 논의의 순서가 바뀌었다. 지금은 이명박 정부의 경제가 출범 100여 일 만에 헝클어진 전말부터 따지는 게 먼저다. ‘강만수 경제팀’의 실패에서 배우지 못하면 아무리 유능한 인물을 부총리에 앉힌들 시행착오가 되풀이될 뿐이다.
개인적으로 강 장관의 거취(유임 또는 경질)엔 그다지 관심이 없다. 교체론에 공감하는 편이지만 툭하면 장관을 바꾸는 게 능사가 아니라는 주장도 경청할 가치가 있다고 여긴다. 경제를 잘 안다고 자부하는 대통령 밑에서 내각의 경제팀장 노릇을 하기가 얼마나 힘들었을지 짐작이 가기도 한다. 하지만 설령 자리를 지키더라도 환율 같은 민감한 가격 변수를 너무 쉽게 건드려 시장의 혼란을 키우고 국내외 경제여건의 변화를 감지하지 못해 결과적으로 경기 관리에 실패한 잘못까지 면책되는 것은 아니다. 외환 투기세력을 비판한 문제의식은 나무랄 것 없지만 시장을 압도할 실력이나 카리스마를 보여주지 못했다. 잦은 소신의 노출로 말의 무게를 떨어뜨렸고, 정책의 그늘을 헤아리는 데도 부족했다.
예산과 세제, 거시정책 권한을 갖춘 기획재정부가 출범했을 때 많은 사람이 공룡 부처의 부작용을 염려했다. 그런데 불과 4개월 만에 장관으로는 부족하니 부총리로 격상시켜야 한다는 의견을 부하 직원들이 펴고 있다. 강 장관의 책임을 희석하는 효과를 노렸을지 모르지만 동시에 그의 리더십 한계를 입증하는 것이다. 강 장관은 자신이 좌장인 경제정책조정회의에 다른 장관들이 걸핏하면 차관을 대신 보내는 이유도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이헌재 씨는 2000년 1월부터 8월까지 재경부 장관을 지냈고, 2004년 재경부 장관 겸 부총리로 복귀했다. 장관 성적표가 부총리 때보다 못했다는 근거가 없다. 재경부는 예산권이 없고 금융정책도 금융감독위원회와 나눠 쓰는 옹색한 처지였지만 동료 장관을 설복하는 논리와 시장을 다루는 기술이 그의 무기였다. 강 장관이 유임되든, 후임이 등장하든 시장의 승복을 이끌어낼 카리스마를 갖춰 달라고 권하고 싶다. 장관의 권위와 역량이 의심받는 현실은 우리 경제의 불행이기 때문이다.
박원재 논설위원 parkw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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