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2월 광주시가 대회 유치 신청서를 제출한 이후 유치위원장을 맡은 필자를 포함한 유치위원들 그리고 국내 체육계 인사들은 전 세계를 누비며 유치전에 총력을 기울였다. 유니버시아드는 여타 국제경기와 달리 세계대학스포츠연맹(FISU) 집행위원 27명의 투표로 개최지를 결정하기 때문에 비교적 단순할 뿐 아니라 정치적 요소도 적게 작용해 왔다.
왜 광주는 유니버시아드를 유치하고자 했는가? 첫째, 광주는 민주, 평화 그리고 인권의 도시이다. 광주의 학생들은 1929년 11월 일제에 항거해 독립운동을 벌였으며, 1980년 5월에는 독재에 항거해 민주주의를 쟁취하는 데 앞장섰다. 이런 광주의 정신은 바로 세계 대학 스포츠정신과 일치한다. 둘째, 광주는 대학의 도시이다. 대학 16곳에 대학생만 13만4000명인 도시다. 대학생이 전체 시민의 약 10%다. 셋째, 세계가 공인하는 정보기술(IT) 국가로서 광주에서 대회가 개최될 경우 최첨단 기술을 활용한 스포츠 제전이 될 것이다.
이런 우리의 논리에 모든 집행위원이 공감했지만 합리성보다는 정치논리에 따라 러시아 카잔의 손을 들어 주었다. 유치에 실패한 요인은 여러 가지로 분석할 수 있다. 우선 준비 기간이 짧았다. 광주는 불과 6개월 남짓 준비한 데 비해 러시아는 삼수째로 6년간 내공을 쌓아왔다. 둘째, 집행위원 27명 중 13명이 유럽 출신으로 지역주의에 밀렸다. 셋째, 실세 총리로 자리를 바꾼 블라디미르 푸틴은 투표 직전 파리에서 진을 치며 마지막까지 영향력을 행사했다.
비록 광주의 이번 도전이 성공하진 못했으나 한 달이 지난 지금 돌이켜 보면 많은 교훈과 성과를 남겼다고 본다. 무엇보다도 광주시민들은 유니버시아드를 계기로 하나임을 다시 확인했다. 유니버시아드 유치 과정에서 142만 광주시민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하나의 목표를 향해 뭉쳤다. 실사 과정에서 20만 명이 넘는 시민이 연도 및 실사 현장에서 보여 준 열기와 응원은 무엇이든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해줬다.
또 광주를 국제무대에 알리는 훌륭한 계기가 됐다. 박 시장과 유치위원들은 유럽과 중남미, 아프리카와 중동 등 전 세계를 오가며 광주를 알렸다. 유니버시아드 유치전은 광주시를 대한민국의 도시에서 세계 속의 도시로 격상시키고 공무원들의 국제화에도 많은 교훈을 주었다.
독일 철학자 아르투르 쇼펜하우어는 “좌절을 경험한 사람은 자신만의 역사를 갖게 된다. 그리고 인생을 통찰할 수 있는 지혜를 얻는 길로 들어선다. 강을 거슬러 헤엄치는 사람만이 물결의 세기를 알 수 있다”고 했다. 광주는 이제 세계의 강물에 뛰어들었다. 때론 격랑에 휘말려도 유니버시아드를 희망했던 것과 같은 강렬한 의지를 잃지 않는다면 목표는 이뤄질 것이다. 이번 유치 과정에서 보여 준 시민들의 열정과 노력, 꿈은 세계를 향해 앞으로 나갈 수 있는 또 하나의 동력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이희범 광주하계유니버시아드 유치위원장 한국무역협회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