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정부가 출범했지만 촛불에 휘둘려 아무것도 되는 게 없고 안 되는 것도 없다. 대통령뿐 아니라 청와대, 내각, 국회도 무기력하기는 매한가지다. 대통령이 공개사과하고 대통령실의 전면개편이 있었지만 반전의 조짐은 보이지 않는다. 기정사실화한 내각 개편으로 행정공백 상태만 초래한다. 고유가에 찌든 서민경제 보살피기도, 양극화 해소를 위한 사회안전망 확보도 뒷전이다. 공권력의 권위는 땅에 떨어진 지 오래다. 경찰력은 시위대의 위력 앞에 떠밀려 다니는 돛단배 신세다. 교통은 마비되고 시민들의 생업조차 뒤틀려 있다.
민의의 전당인 국회는 촛불에 막혀 개원조차 못하고 산송장 신세다. 국회로 들어오라는 여당의 목소리는 허공에 질러대는 소리 없는 메아리와 같다. 시위대의 일원이 돼 버린 야당 의원은 국민의 대표가 아니라 그냥 한 사람의 시민일 뿐이다. 여의도 정치의 실종은 민주주의의 근간인 대의민주주의를 희화화한다. 국회는 텅 비어 있는데 여야는 각기 당권 장악을 위한 자기들만의 정치행사에 여념이 없다.
벌써 두 달째 톱뉴스를 장식하고 있는 양극화된 촛불보도도 혼란만 부채질한다. 한쪽에서는 시위를 미화하고 경찰의 강제 진압을 비난한다. 다른 쪽에서는 법과 원칙에 따라 시위대를 해산시키지 않는다고 질책한다. 게다가 광고 게재 거부 공세까지 겹쳐서 언론계는 이전투구(泥田鬪狗)의 양상이다. 언론계에 팽배한 자신만의 정의는 우리 사회를 더욱 찢어 놓는다. ‘땡전뉴스’에 저항하던 민주언론은 집안싸움에 휘둘려 지낸다. 도무지 어느 쪽이 정론직필(正論直筆)인지 가늠하기 어렵다.
혼돈상태를 확 뚫어 줄 그 어떤 묘책도 보이지 않는 답답함이 가슴을 저민다. 이제 광장의 촛불은 민의의 전당인 여의도 불빛으로 옮겨져야 한다. 의회의 존재 이유는 다원사회에서 일상화된 갈등을 통합하고 봉합하는 데 있다. 직접민주주의적인 촛불을 국회로 회귀시키지 못한다면 여야 모두에게 불행한 대의민주주의의 파탄을 초래할 뿐이다.
국민적 정당성의 또 다른 축인 정부의 청사에도 불을 밝혀야 한다. 대통령만 있고 총리는 보이지도 않는다. 대통령과 총리의 권력 분점도 필요하지만 정치권력과 행정권 사이의 역할분담과 상호견제도 동시에 작동돼야 한다. 정당한 정치권력이 관료세력에 휘둘려서도 안 되겠지만, 행정이 정치에 예속되는 순간 행정의 계속성과 전문성은 궤도를 일탈하기 마련이다. 공직자들에게 영혼과 사명감을 불어넣어야 한다. 특히 민생 현장에 있는 공직자들이 자긍심을 갖고 책임지고 일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돼야 한다. 대통령과 장관들의 담화만으로는 현장까지 소통되기 어렵다.
어느새 어른이 없는 사회가 되어 버린 현실에서 대통령만이라도 국가 최고지도자로서 포용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정치적, 사회적, 종교적 편견으로부터도 벗어나야 한다. 최고권력자도 성인(聖人)이 아닌 이상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오만해지기 쉽다. 민심을 왜곡하는 간신배는 과감히 내치고 목숨을 걸고 직언하는 충신들을 가까이 해야 한다. 청와대와 국민이 느끼는 온도 차이는 언제라도 또 다른 촛불을 예고할 뿐이다.
성낙인 서울대교수·헌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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