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이광표]바다 속 고려청자 만났을 때

  • 입력 2008년 7월 1일 02시 58분


2002년 4월 어느 날, 한 어부가 전북 군산시 비안도 앞바다에서 소라를 채취하고 있었다. 30분이 지나도록 소라 하나 발견하지 못해 체념하고 돌아가려던 순간, 눈앞에 푸른빛이 번득였다. 고려청자였다. 1시간 동안 개펄에 드러난 그릇들을 건져 올리기 시작했다. 모두 243점.

그는 한 대학 박물관에 이 사실을 신고했고 소식을 전해 들은 국립해양유물전시관은 그해 여름 수중 발굴에 들어갔다. 그곳에서 발굴한 청자는 3000여 점에 달했다.

그때 세간에 이런 얘기가 떠돌았다. “청자를 수백 점 발견했다는데 그 어부 벼락부자 된 것 아닐까. 나도 몰래 바다 속에 들어가….”

문화재보호법에 따르면 바다와 땅 속에서 나온 유물은 모두 국가 소유다. 그 대신 유물을 발견한 사람에게는 보상금을 지급한다. 전문가들이 모여 그 유물의 가격을 평가한 뒤 발견자와 발견 장소의 주인에게 절반씩 지급한다. 누군가 남의 땅에서 문화재를 발견해 신고했다면 그는 땅 주인과 절반씩 보상금을 나누어 받는다. 자기 땅에서 발견했다면 전액 다 받는다. 바다는 국가 소유이기 때문에 정부와 발견자에게 절반씩 돌아간다.

당시 전문가들이 평가한 비안도 청자의 가격은 한 점에 약 30만 원이었다. 그 어부가 받는 보상금은 한 점에 약 15만 원이었다. 모두 243점이니 약 3700만 원이 지급됐다. 사람들은 “고려청자가 고작 30만 원?”이라면서 놀라워했다.

하지만 고려청자는 수십만 원부터 수억 원까지 여러 등급이 있다. 비안도 청자는 중급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게다가 정부의 평가액에 시장에서 통용되는 투기성 프리미엄까지 얹어줄 수는 없는 법. 정당한 평가액이었다.

그 어부는 보상금이 너무 적다는 데 불만을 갖게 되었다. 그는 2005년 뒤늦게 “내가 발견해 신고한 덕분에 국가 기관이 3000여 점의 청자를 추가로 발견했으니 그 3000점에 대한 보상금도 지급해야 한다”며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올해 5월 대법원에서 패소함으로써 3년에 걸친 소송은 마무리됐지만 사실 애초부터 비상식적인 주장이었다.

지난주 어이없는 소식이 또 터져 나왔다. 2007년 충남 태안군의 대섬 앞바다 청자 발굴 작업에 참여했던 잠수부가 최상급 고려청자 19점을 몰래 빼돌린 뒤 시중에 내다 팔려다 경찰에 붙잡힌 것이다. 그는 다른 잠수부보다 5분 정도 먼저 바다 속으로 들어가 청자를 다른 곳에 묻어 둔 뒤 다시 몰래 꺼내 갔다고 한다.

먼저 문화재청의 감독 소홀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이와 함께 수중 문화재를 바라보는 태도도 반성할 필요가 있다. 일확천금을 가져다주는 대상으로 보려는 태도, 먼저 보는 사람이 임자라는 식으로 업신여기는 태도가 팽배해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서해 바다는 고려청자의 보고다. 고려 때 전북 부안과 전남 강진에서 만든 청자를 수도 개경(지금의 개성)으로 운반하던 도중, 배들이 침몰하면서 수많은 청자가 가라앉았다. 지금도 매년 수십 건의 청자 발견 신고가 들어오고 수중 발굴을 할 때마다 수천∼수만 점의 청자가 발견된다. 그 덕분에 고려청자의 유통 및 생활상 연구가 부쩍 활성화됐다. 수중 문화재 발굴은 역사의 새로운 발견인 셈이다.

그런 수중 문화재는 지금 우리 것이 아니다. 그 주인은 역사다. 이것이 수중 문화재를 돈으로 보지 말아야 할 까닭이다.

이광표 문화부차장 kplee@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