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우리 사회는 대학이 지식의 소매상을 넘어 과학기술과 산업 발전을 선도하는 원천적 ‘지식발전소’로서 새로운 역할을 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따라서 세계적 경쟁력을 갖춘 연구중심대학 육성은 국가적인 핵심 성장전략이라 할 수 있다. 세계 정상급 수준의 대학에는 세계 정상급 수준의 교수가 있다. 사실 대학의 질적 수준은 그 구성원의 질적 수준을 뛰어넘을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세계 정상으로의 도약을 위해 대학은 양보다 질을 우선시하고 최고 수준의 연구환경과 지원체계를 갖추어 세계적 석학들을 유치하고 이들에게 자율적이고도 안정된 연구활동이 가능하도록 해주어야 한다. 대학의 우수한 교수진이 빚어내는 연구 결과가 네이처, 사이언스, 셀 등으로 대표되는 세계 최고의 저명학술지에 꾸준히 발표되고 세계적으로 독보적인 연구브랜드가 꾸준하게 만들어질 때 비로소 세상이 ‘세계적 연구중심대학’으로 인정해주는 것이다.
대학 경쟁력이 국가 경쟁력
세계적으로 연구중심대학 간의 치열한 경쟁 속에서 후발 주자가 서구의 정상급 대학을 따라잡기는 결코 쉽지 않다. 매년 발표되는 세계 대학 랭킹에서 최정상의 20, 30위권 내 대학 이름은 쉽게 움직이지 않고 있다. 그러나 최근에 홍콩대, 싱가포르국립대, 중국 칭화대 등 아시아권 대학들이 세계적 연구중심대학의 반열에 이름을 올리며 기존 질서에 지각변동을 일으키고 있다. 한발 늦긴 했으나 국내 주요 대학들도 앞 다투어 개혁을 단행하고 대대적인 국제화에 나서고 있다.
하지만 우리 대학들은 대부분 짧은 역사에 그나마 대학 내에 연구실을 차리고 간간이 국제학술지에 논문을 발표하기 시작한 지 20여 년에 불과하다. 간혹 의미 있는 연구 성과를 세계적 저명 학술지에 발표하기 시작한 지도 10년 남짓이다. 이런 국내 대학들이 수백 년 전통을 자랑하는 하버드대, 캘리포니아공대(Caltech), 코넬대 등 세계 최고 대학들의 위치를 단기간에 넘어설 수는 없다. 그렇더라도 최소한의 경쟁상대로 자리매김할 수는 없는 것일까.
위에서 열거한 몇몇 아시아 대학이 최근 급부상하는 배경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들을 모델로 포스텍이 3년 전에 설립한 철강전문대학원도 그 가능성을 보여준다. 국적을 불문한 철강분야 세계 최고의 석학교수 초빙, 학제 간 융합연구를 위한 전문연구실 개설, 글로벌 석박사 과정 학생 유치, 모든 강의 연구 행정의 영어 상용 등으로 짧은 기간에 세계 철강분야 교육 연구에서 선도적 지위를 확보해 가고 있다. 이미 ‘글로벌 기업 포스코 뒤에는 포스텍 철강대학원이 있다’는 말이 나돌 정도로 세계 철강업계의 부러움과 경계의 대상이 되고 있다.
지금까지 노벨과학상 수상자는 500여 명, 배출국은 27개국에 이르지만 우리나라는 아직 요원해 보인다. 노벨상의 꿈을 앞당겨 실현하려면 세계적 인재 유치와 탁월성의 발현을 위한 근본적인 대책을 대학들도 고민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이를 위해 소요되는 막대한 예산 확보가 시급하다. ‘세계적 연구중심대학 육성사업’의 일환으로 정부가 직접 나서서 대학의 전략적 우수인재 유치를 돕는 재정지원 계획은 매우 적절한 방안이다. 이 사업은 대학별로 전략적 학문분야를 선택해 세계 정상급 인재를 과감하게 유치하고, 이들이 독자적 연구에 몰입할 수 있는 연구환경 구축을 효과적으로 지원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우리 대학들도 비교적 짧은 기간에 세계 정상의 문을 두드릴 기회를 잡을 수 있었으면 한다.
국적불문 인재유치 적극 나서야
물론 단기간에 해외의 우수한 인재를 대거 유치하고 필요한 인프라스트럭처를 갖추어 나가는 작업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지나치게 단기적 성과를 추구하는 것도 위험한 일이다. 따라서 인내심을 갖고 좀 더 장기적인 안목에서 대학에 대한 지원과 투자를 늘려나가야 한다. ‘세계적 연구중심대학 육성사업’이 알찬 열매를 맺어 대학 내에 아직 비어 있는 ‘미래의 한국 과학자 좌대’가 머지않아 그 주인을 찾게 되기를 기대한다.
백성기 객원논설위원·포스텍 총장 sgbaik@postech.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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