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국민실망에 위기의식 느껴야
이처럼 대통령제라는 이름하에서도 의회가 중요한 이유는 다수의 대표에 의해 국민들이 대표되고 있기 때문이다. 다수의 대표가 논의하고 타협하면 대통령 1인에 의한 결정보다 더 나은 선택을 할 것이라는 기대가 있기 때문이다. 민주주의를 운영하는 기본 가치가 대표성과 효율성이라면 의회는 전자에, 대통령은 후자에 더 중점을 두고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의회는 늘 소란하고 신속한 결정을 내리지 못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민주주의 국가에서 국민들은 의회를 높게 평가하지 않는다. 미국에서는 ‘공공의 적으로서 의회(Congress as public Enemy)’라는 제목의 책이 의회 관련 연구의 고전 중 하나이다. 지난달 중순 미국갤럽의 조사에 따르면 의회를 조금이라도 신뢰하는 응답자는 12%였다. 조사대상 16개 기관 중 꼴찌이며, 가장 신뢰를 받은 군대의 신뢰비율 71%와 비교할 수 없는 정도의 수준이다. 그럼에도 군이 대통령의 통제를 받고 파병이나 전쟁을 하기 위해서는 의회의 동의가 있어야 한다는 제도적 역할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한국 국회에 대한 평가는 미국 의회보다 더 낮다. 국민은 4명 중 3명꼴로 지난 17대 국회를 부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그러나 국회에 대한 국민평가가 낮다는 것과 국회무용론은 구별돼야 한다. 개원조차 못하는 국회에 대한 국민의 실망이 완전 포기나 외면으로 바뀌지 않도록 18대 국회가 발전된 모습을 보이기 위해서는 최소한 두 가지는 고쳐야 한다.
첫 번째로 소신만을 내세우는 정치는 버려야 한다. 국회정치는 이질적 집단들이 집단의사를 형성해 가는 것이다. 상대를 이기기 위해 정치를 하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은 사람을 만족시키기 위해 국회에서 논의하는 것이다. 따라서 18대 국회에서는 투사(鬪士) 같은 의원이 아니라 유연한 의원들이 높은 평가를 받아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정당들이 의원들에게 당론을 강요하는 경우가 적어야 할 것이다.
두 번째로 국회의장의 현실적 권한을 확보해줘야 한다. 국회의장의 권한을 확대한다고 해도 의원들 위에 군림하는 위치가 되지는 않는다. 의장을 못 믿어서 당적을 버리게 하고, 의장 임기 후에는 정계에서 은퇴하는 관례를 만드는 것은 결코 국회의장의 위상 강화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국회의장의 정치적 중립화라는 명분하에 국회의장직을 경시하게 만든다. 이번 국회에서 정당들은 국회의장의 권한을 확인하는 회합을 갖고 위기 시에 국회의장의 리더십이 발휘될 수 있는 제도적인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국회의장은 정당 간의 갈등을 관리하는 균형자일 뿐만 아니라 국회 정상화를 책임질 수 있는 권한이 있어야 한다.
유연한 사고-의장권한 확대 필요
17대 국회 개원을 앞두고 2004년 5월 31일 동아일보는 ‘17대 국회, 국민을 두려워하라’라는 사설을 실었다. 유감스럽게도 같은 충고가 18대 국회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쇠고기 정국의 갈등을 국회에서 해결할 능력도 보여주지 못하고 있지만 한나라당과 통합민주당이 원내대표를 선출해 곧 국회가 정상화되기를 기대한다. 국회의원들은 여야가 국회에서 함께하는 정치를 보여주지 못한다면 국회의원 탄핵의 피켓도 등장할 날이 머지않았다는 위기의식을 느끼기 바란다.
이현우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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