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이주흥]예술과 외설의 회색지대

  • 입력 2008년 7월 7일 02시 59분


성(性)의 개방과 자유화 물결, 인터넷 등 정보통신의 발달로 성표현물이 늘어나고, 그 접근이 용이해졌다. 상업주의와 결탁한 외설이 기승을 부리면서 실험정신을 발휘한 예술인지, 예술을 위장한 음란물인지 예술과 외설의 경계가 모호해졌다.

음란물이 성폭행을 부추길 수 있고, 또 윤리적 위험으로부터 청소년을 보호해야 한다는 관점에서 예술 표현의 자유에도 한계가 있다는 점에는 이론이 없다. 하지만 표현의 자유를 빼앗긴 음란물을 과연 어디까지로 볼 것인지는 전 세계적으로 큰 논란거리가 되고 있다.

원래 법이란 각자의 세계관 인생관 직업 재산 등에 따라 그 이해가 달라진다. 같은 법조문을 두고도 재판을 받는 피고인 피해자 검사 판사 변호사 등 서로 처해 있는 형편에 따라 보는 시각이 다르다. 이런 법 이해의 상대성은 ‘음란’과 같은 불확실하고도 가변적인 개념에서는 더 심화된다.

음란 개념은 풍속 도덕과 밀접해 그 시대와 사회에 따라 변화하는 상대적, 유동적인 것이다. 무엇이 공동체에 해롭고 어디에 어떻게 관용의 한계를 설정할지는 시대 변화에 따라야 하고 또 변화를 겪기 마련이다.

외설 개념 객관화의 어려움

판례에서는 음란한 문서라 함은 ‘일반 보통인의 성욕을 자극해 성적 흥분을 유발하고 정상적인 성적 수치심을 해하여 성적 도의관념에 반하는 것’이라고 하는데, 여기서 ‘일반 보통인’ ‘수치심’ ‘도의관념’이라는 기준은 구체적이지 않아 불명확하다. 그리고 ‘그 시대의 건전한 사회통념에 따라 평가해야 한다’고 하는데 ‘건전한 사회통념’의 실체도 모호하다. 이런 어려움 때문에 판사들조차 음란물 판정의 객관성을 확보하기 위해 문제된 책이나 비디오를 번갈아 가면서 혹은 삼삼오오 모여서 읽고 보며 논쟁을 벌인다.

본인의 의도와 무관하게 음란성 여부가 판단되므로 이에 연루된 일반인의 당혹감은 더하다. 누구나 본의 아니게 이 시비에 휘말려들 가능성이 있고 실제 큰 곤욕을 치르기도 한다. 할리우드 배우 리처드 기어는 지난해 인도의 어느 공개행사에서 여배우의 볼에 입을 맞췄다가 음란 시비로 혼쭐이 났다.

특히 회색지대의 경계에 있는 작품을 예술이나 외설로 구분하는 작업은 어렵다. 세계명작의 반열에 올라 있는 ‘채털리 부인의 사랑’을 1950년대까지도 일본 법정은 음란물로 판정했다. 대법원은 미술교사가 자신의 홈페이지에 게시한 ‘만삭인 처와 자신의 벌거벗은 몸’ 사진에 대해 “예술성이 있다고 해 음란성이 부정되는 것은 아니다”라면서 원심 판결을 깨고 음란성을 인정했다.

소설과 이를 바탕으로 한 연극이나 영화는 그 표현 형식에 따라 예술성이 달리 취급되기도 하고, 상업적 목적으로 대중 앞에 등장하면 명화가 음화가 되기도 한다. 스페인 마드리드의 프라도 미술관에 걸려 있는 프란시스코 드 고야의 ‘옷을 벗은 마하’는 우리나라에서 성냥갑 속에 들어가면 음란해진다. 예술은 시대에 따라 변하는 역사적 개념으로 끊임없이 변해 왔으므로 예술을 고정적 개념으로 생각하는 것은 예술의 현실과 거리가 멀다 하겠다.

그런데 예술, 표현의 자유도 최대한 존중돼야 하지만 청소년의 자유로운 인격권의 발현, 부모의 교육권 그리고 음란물에 접하지 않을 프라이버시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그 조화로운 조정을 위해 충돌하는 양 법익 사이의 이익교량을 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청소년의 건전한 정신건강과 윤리의식의 발달을 저해하는 표현물, 특히 인터넷을 통한 미성년자에 대한 음란물 접근은 규제돼야 한다.

다만 법적 안정성 측면에서 어떤 행위가 금지되는지가 명확해야 국민들이 자신의 행동을 조절할 수 있는데 무엇이 금지되는 표현인지가 불명확한 경우에는 규제를 염려해 표현행위를 스스로 억제하게 되므로 그 규제의 목적과 대상이 분명하고 그 효과에 대한 확신이 있어야 한다.

미성년에 노출된 음란물이 문제

이런 불확실성에 따른 갈등과 대립은 건전한 사회의 지속을 위해 용광로에 녹여 수렴돼야 하고 법정이야말로 이런 사회적 분쟁의 타협과 조정, 화해의 장이 돼야 한다. 다양한 의견의 수렴과정이 법정에서 평화적으로 대화와 토론으로 이뤄져야 민주주의와 법치주의가 제대로 자라게 된다. 비단 음란뿐만 아니라 일반적인 법에 대한 이해와 인식에 있어서도 객관화를 위한 노력은 법관만이 아니라 국민 모두가 기울여야 할 몫이다.

이주흥 법무법인 화우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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