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이기홍]美 원조보수 헬름스가 남긴 것

  • 입력 2008년 7월 8일 02시 57분


“무려 40%의 사람들이 그가 죽기를 원한다. 동시에 40%가 그를 위해 기꺼이 죽을 각오가 돼 있다고 한다.”

미국 독립기념일인 4일 87세를 일기로 타계한 제시 헬름스 전 상원의원을 수식하는 숱한 표현 가운데 하나다.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에 이어 20세기 후반 미국 정치사에서 가장 중요한 보수주의자였다”(MSNBC방송)는 평가를 받는 그는 한국식 표현으로 하면 ‘원조 꼴통 보수’ 그 자체였다.

1960년대 노스캐롤라이나의 지역 라디오방송에서 공산주의, 법질서 훼손, 사회기강 해이 등에 대한 신랄한 비평으로 인기를 끈 그는 1973년 상원의원이 돼 2003년 은퇴할 때까지 “인기를 얻기 위해 워싱턴에 오지는 않았다”며 소신 행보를 계속했다.

특히 아무리 강심장의 보수파라도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인종 관련 사안에 대해서도 거침이 없었다.

1983년 마틴 루서 킹 목사 생일을 공휴일로 지정하는 법안을 상원에서 유일하게 반대했다. ‘인종차별주의자’라는 비난이 쏟아졌고, 그의 낙선 운동을 위해 전국의 진보주의 단체들이 수백만 달러의 기금을 모으기도 했다.

민권운동가, 히피, 세금 인상론자, 낙태 찬성론자, 그리고 해외원조를 주도하는 국무부 관리들이 그의 주요 타깃이었다.

베트남전쟁 반대 시위대에 “다른 방법으론 (남의) 관심을 끌 능력이 없는 가느다란 머리카락의 꼴사나운 젊은 여자들”이라는 외모 차별적인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그런 논쟁적 행보에도 불구하고 그를 다른 보수파 정치인들과 차별시켜주는 요소들이 있었다. 그는 비판의 잣대를 공화당 대통령들에게도 엄격히 적용했다.

1975년 소련 반체제 인사의 백악관 방문이 거부되자 “공산주의자를 자극할까봐 겁먹은 수줍은 겁쟁이”라고 제럴드 포드 대통령을 비판했다. 레이건 대통령조차 “헬름스는 가시 같은 존재”라고 토로했다.

1991년 말 보리스 옐친 러시아 대통령에게 편지를 보내 1983년 소련군에 격추된 KAL기의 블랙박스 공개를 촉구한 이도 바로 그였다. 결국 러시아는 존재 자체를 부인해오던 테이프를 국제민간항공기구에 제출했다.

그는 로비스트의 사무실 출입을 금지했지만 10대 청소년들은 항상 환영했다.

한 요양원에서 타계한 그는 2녀 1남을 뒀다. 막내아들은 그가 결혼 21년째에 “뇌성마비를 앓는 아홉 살 고아 소년의 소원이 ‘크리스마스를 함께 보낼 엄마 아빠를 갖는 것’”이라는 신문기사를 읽고 입양한 그 뇌성마비 소년이다.

이기홍 워싱턴 특파원 sechep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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