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점으로서는 신상녀만큼 고마운 고객이 없죠. 하지만 환영받지 못하는 신상녀도 있습니다. ‘짝퉁’ 제품을 만들기 위해 신상품을 베끼는 ‘카피 신상녀(이하 카피녀)’입니다.
최근 현대백화점 사내 게시판에 한 신입사원이 카피녀 때문에 고민이라며 글을 올렸습니다. 여기에 수백 개의 댓글이 달렸습니다.
여름 정기세일이 끝나고 가을 신상품이 선보이는 7월 말은 동대문이나 온라인쇼핑몰에서 활동하는 카피녀들이 등장하는 때입니다. 의류 도매시장에서는 여름 휴가철이 끝난 다음 달 중순부터 가을 신상품을 팔기 때문입니다.
20, 30대 여성들이 선호하는 시스템이나 오즈세컨, 마인, 바네사브루노, 오브제, 손정완 등이 카피녀들의 먹잇감이죠. 동대문 의류상가나 온라인쇼핑몰에서 ‘시스*st’ ‘바네스브루노 스탈’ 등의 수식어가 붙은 채 팔리는 제품들이 이들 브랜드를 베낀 ‘짝퉁’입니다.
보통 카피녀들은 고가(高價)에도 불구하고 제품을 사이즈와 색상별로 여러 벌씩 사 간다고 하는군요. 이렇게 산 옷을 일일이 분해한 뒤 패턴을 베낀다고 합니다. 그리고 분해한 옷을 다시 가봉한 후 아르바이트생을 시켜 환불해 달라고 합니다.
카피녀들이 환불을 요청한 옷에는 초크가 묻어 있거나 심지어 시침핀까지 꽂혀 있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매장에선 ‘울며 겨자 먹기’로 환불해 준다고 하네요. 카피녀들과 실랑이를 벌이는 동안 다른 고객을 놓치느니 그냥 환불해 주는 편이 낫다는 겁니다.
하지만 갈수록 카피녀들의 출몰이 잦아지는 데다 정품의 10분의 1에 불과한 가격으로 시장을 잠식해 나가자 백화점 업계에서도 방책을 궁리하고 있습니다.
현대백화점은 가을부터 “디자인의 무단도용으로 다른 고객에게 불편을 주는 경우 환불이나 교환이 안 된다”는 내용의 안내문을 내걸기로 했습니다. 롯데백화점의 경우 카피녀들이 고용한 아르바이트생이 환불을 요청하면 구매 장소나 구매 이력, 상품 상태를 꼼꼼히 따진다고 하는군요.
물론 해외 유명 패션쇼에 선보인 제품들을 그대로 베끼는 국내 패션브랜드들도 할 말은 없을 듯합니다. 내가 베낀 디자인은 남도 쉽게 베낄 수 있는 것이죠.
합리적인 가격과 독특한 디자인으로 국내 의류시장을 잠식해 나가는 해외 SPA(자라나 갭, 유니클로 등 생산부터 소매유통까지 직접 맡는 패션회사)에 맞서려면 디자인도 엄연한 지적 자산이라는 생각을 해야 하지 않을까요.
정효진 기자 wiseweb@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