뜬금없는 소리인지 모르겠지만, 민심에 대한 절망이 깊어지면서 대통령중심제에 대한 염증도 깊어졌다. 제 손으로 뽑아놓고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시도 때도 없이 ‘아웃(OUT)’을 외치는 국민에겐 맞지 않는 옷이라는 회의가 깊어졌다. 방송국 PD들의 그럴듯한 ‘주술(呪術)’에 현혹돼 헌법 제1조까지 외치며 청와대로 진격하는 ‘성마른 주권욕(主權慾)’의 소유자들에겐 더욱 맞지 않는 옷이라는 심증을 굳히게 됐다. 대통령선거는 선거일 당일 하루 기분 삼아 한번 해보는 ‘모의 투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돌이켜보면 대통령 직선제를 되찾은 1987년 이후 단 한 사람도 성한 대통령이 없었다. ‘성공한 대통령’은 대통령학 교재에나 등장하는 수사(修辭)에 불과했다. 노태우 대통령은 3당 합당으로 거대 여당을 만들고 나서야 비교적 안정된 체제를 유지할 수 있었다. 재임 기간 그나마 안정을 누렸던 사람은 김영삼, 김대중 대통령이었다. 그러나 양김 정권의 안정은 두 사람의 특별한 카리스마와 특별한 지역기반 덕분이었지, 대통령중심제라는 제도의 힘으로 만들어진 게 아니었다. 지역기반조차 변변치 않았던 노무현 정부가 출범하면서 대통령중심제의 위기가 표면화하기 시작했다. 노 대통령은 “못해 먹겠다”는 소리를 연발했다. 촛불이 노무현 정권을 탄핵에서 구해냈지만, 국가 권력구조의 안위(安危)를 촛불에 의지할 수는 없는 일이다. 노 대통령이 탄핵을 당한 게 2004년 3월, 취임 후 1년이 막 지난 때였다. 그런데 이명박 정권은 100일도 안 돼 ‘길거리 탄핵’의 표적이 됐다.
대통령중심제의 장점은 강력한 리더십과 체제의 안정성이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우리 정치사에서 그 장점이 현실화한 때는 박정희, 전두환 군사독재정권 때뿐이었다. 이젠 권력구조와 정부 형태 자체를 다시 들여다봐야 할 때다. 식품의 안전성 문제로 국가 권력구조 자체가 흔들린다는 건 제도의 수명이 다했다는 증거라고 봐야 한다. 한국정치학회 회장을 지낸 이정복 서울대 교수는 저서 ‘한국정치의 이해와 분석’에서 이런 질문을 던졌다. “잘되는 경우는 대통령중심제든, 의원내각제든, 이원집정부제든 큰 차이가 없다. 문제는 못되는 경우에 어떤 정부 형태가 우리에게 더 나은가 하는 것이다.” 지금이야말로 바로 이런 문제의식을 공론화할 때다.
김창혁 논설위원 ch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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