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런던에서 ‘자유 프랑스’ 망명정부를 이끌던 드골은 파리 해방 후에 자신이 제시한 집행권을 강화한 헌법안이 국민투표에서 부결되자 정계를 은퇴해 버린다. 1958년에 국가가 누란의 위기에 처하자 국민의 부름을 받고 제5공화국 헌법을 기초한 드골은 집권 10년 만에 신임투표를 동반한 국민투표에서 실패하자 깨끗이 사임했다.
대한민국 건국의 아버지 이승만과 산업화의 지도자 박정희는 장기집권의 야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결국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했다. 지도자의 관용과 아집의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1948년 제헌국회는 대한국민의 이름으로 5000년 역사상 최초로 국민주권주의에 기초한 대한민국의 기본법인 헌법을 제정했다. 제헌절 노랫말과 같이 ‘삼천만 한결같이 지킬 언약 이루니, …이날은 대한민국 억만년의 터다’. 건국을 알리는 유일한 기념일인 제헌절이 공휴일에서 제외되고 폄훼돼서는 안 된다. 제헌절은 삼일절 광복절 개천절과 더불어 4대 국경일이다.
제헌헌법은 곧바로 수난을 겪기 시작한다. 이승만 대통령은 장기집권을 제도화하는 위헌적인 개헌을 자행한다. 4·19혁명으로 탄생한 제2공화국도 소급입법의 헌법적 근거를 마련한다. 5·16군사정변으로부터 비롯된 제3공화국은 3선 개헌을 거쳐 유신헌법으로 이어진다. 1980년 ‘서울의 봄’을 짓밟은 제5공화국이 6·29민주화선언을 맞으면서 1987년 헌법체제가 탄생한다. 불과 40년 동안에 아홉 번의 헌법 개정이 단행됐다. 그중에서 다섯 번은 헌정사적 격동의 와중에서 실질적으로 헌법 제정에 해당하는 전면 개정이다.
제헌헌법의 수난에도 불구하고 기본 틀을 유지하는 가운데 기본권 분야에서는 많은 진화를 거듭한다. 환경권,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는 시대 변화를 반영한다. 10년을 지속한 적이 없는 헌법의 불안정성이 종식되고, 1987년 이래 20년 이상 헌법의 안정을 구가한다. 그 사이에 민주주의의 꽃이라는 평화적 정권 교체도 두 번이나 성공적으로 작동한다.
과거에는 헌법의 제정과 개정이 급작스럽게 이뤄졌다. 제대로 된 연구와 토론을 통한 국민적 공론 과정은 생략된 채, 시대 상황을 합리화하는 데 급급했다. 국민적 성원에 힘입은 제2공화국과 제6공화국 헌법도 예외가 아니다. 이제 헌법의 안정 속에 차분하게 60년을 되돌아보면서 대한민국의 ‘억만년의 터’가 될 헌법적 좌표를 고민할 때다.
먼저 공론의 장을 형성하기 위해서는 국가적 차원의 헌법조사연구를 지속적으로 진행해야 한다. 헌법의 조사연구와 개정 논의는 오해의 소지가 있는 정부보다는 민의의 전당인 국회에서 진행해야 한다. 정부 국회 시민사회 학계가 동참해 국민적 합의를 도출해야 한다.
새 헌법은 인류사회의 보편적 가치인 인권을 존중하고, 지난 60년간 쌓아 올린 헌정사적 전통을 존중해야 한다. 대통령을 향한 권력의 쏠림현상을 차단하고 대통령, 총리(내각), 국회의 삼각 축이 견제와 균형을 이루는 권력분점을 현실화해야 한다.
이제 산업화와 민주화의 결정체로서 제3세계의 모델이 될 수 있는 헌법을 만들어 내자. 제헌 60주년을 맞이하여 헌법사랑이 나라사랑임을 재확인하자. 그리하여 그동안 쌓아 올린 한국적 민주주의의 위대한 금자탑을 바탕으로 민주법치국가로 재도약하는 이정표를 세워 나가자.
성낙인 서울대 교수·헌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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