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관광 목적이라지만 엄연히 적성국가인 북한에 우리 국민이 매일 수백, 수천 명 드나들다 보면 언제 무슨 돌발사태가 일어날지 모른다. 그런데도 국가 최고결정권자가 판단의 근거로 삼을 자료라곤 민간기업의 보고밖에 없다니 이게 정상인가. 군(軍)과 국가정보원은 뒷짐만 지고 있어도 무방한가. 합참은 당초 현대아산 관계자의 얼버무리는 말만 듣고 박왕자 씨의 사인(死因)을 ‘질병사로 추정된다’고 청와대에 보고했다. 대형 상황이었더라면 참으로 아찔할 지경이다. 합참은 이후 사실을 확인하고도 정정보고를 하지 않았다. 이건 시스템 붕괴에 해당한다.
무엇보다 국가안보와 관련한 위기 상황이 발생했을 때 청와대 안에서 정보 소통과 분석이 제대로 안 되고 있는 것이 문제다. 위기정보상황팀이 있지만 임시조직인 데다 이전 정부에 비해 위상 기능 전문성이 훨씬 떨어진다. 위급 상황이 발생해도 대통령에게 직보(直報)도 할 수 없다. 청와대가 이번 사건을 인지한 뒤 대통령에게 보고하는 데 1시간 50분이나 걸린 것은 시스템의 전면적 고장을 뜻한다. 청와대 사람들이 도대체 무엇 때문에 새벽부터 밤중까지 바쁜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정부의 능력은 위기관리에서 판가름 난다. 지금까지의 이명박 정부는 낙제에 가깝다. 위기의 실체를 정확히 인식하지 못해 대응에 실패한 ‘쇠고기 파동’을 겪고도 비슷한 결과를 재연한 것이 11일의 상황대처다.
일각에서는 위기관리시스템이 ‘고장 난 게 아니라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까지 나온다. ‘아무리 강한 사슬도 그중 가장 약한 고리에 의해 강도가 결정된다’는 말이 있다. 국가 조직이라고 예외일 수는 없다. 이명박 정부가 ‘약한 고리’를 찾아내 보강하지 않는다면 국민이 언제 어떤 황당한 일을 또 당할지 모른다. 대통령은 정부의 실상을 꿰뚫고 있는지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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