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박철희]쇠고기, 총격 그리고 독도

  • 입력 2008년 7월 17일 03시 00분


대미 외교는 촛불에 가라앉았고, 대일 외교는 독도문제로 요동치고, 대북 협상은 총격으로 날아갔다. 믿었던 미국과 일본에 뒤통수 맞고 북한에 외면당하는 형국이다. 한미일 공조에 바탕을 둔 4강 외교 강화라는 이명박 정부의 외교 전략이 밑바닥까지 송두리째 흔들리는 총체적 위기를 겪고 있다.

외교전선이 어느 하나 성한 데가 없는 만신창이다. 잘 들여다보면 마치 접시 물에서 허우적대는 격이다. 이 정도에 정부가 휘청거린다면 더 큰 위기가 닥쳤을 때 어찌될까 걱정이 된다.

정부는 국가와 국민의 안전을 지키고 국민생활에 안심감을 안겨주고 경제와 사회의 안정을 도모해야 할 사명이 있다. 그것이 제헌절을 기리는 헌법정신의 기본이다. 국가의 내정과 외교가 분리돼 있다는 환상은 버릴 때다.

한국 같은 분단국가, 국제무역국가, 자원의존국가는 국가의 안녕과 흥망이 외교안보에 크게 좌우된다. 바람 잘 날이 있어야 집안을 챙길 여유가 생기는 법이다. 총체적 위기에 봉착한 한국외교의 복원을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우선 ‘외교 컨트롤타워’를 세워야 한다. 안타깝게도 외교의 구심점이 안 보인다. 외교안보 같이 복잡하고 전문적인 사안은 다양한 고려와 신중한 선택이 요구된다. 부처의 의견을 조율하고 이를 잘 통합해내는 구심점이 있어야 한다.

이명박정부 외교전략 총체적 위기

바람직하기로는 대통령의 지근거리에 있는 외교안보수석비서관이 대통령의 의중을 잘 읽고 조언하는 게 맞다. 하지만 차관급 수석이 장관을 움직일 순 없다. 장관 역시 청와대의 지침이 정해지지 않았는데 먼저 움직일 리가 없다. 외교안보라인의 체제 정비가 시급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정책 대응의 폭과 수위, 그리고 완급을 종합적으로 판단하는 조절판 역할이 청와대를 중심으로 잘 작동해야 한다. 위기대응체제도 현실화돼야 마땅하다. 대통령에게 비상상황이 보고되는 데 1시간 반 이상 걸리는 정부는 국민이 신뢰하기 어렵다. 책임과 권한이 있는 참모를 쓸 수 있어야 대통령이 산다. 아니면 모든 비난의 화살이 계속 대통령에게 직접 날아들 것이다.

둘째, 전임 정권의 반대편으로 뛰어가는 일만이 능사가 아님을 깨달아야 한다. 외교는 상대가 있어 일관성과 지속성이 있어야 한다. 쇠고기 협상은 전임 정권의 협상의 연장선상에서 임했어야 버틸 수 있었다. 퍼주기는 시정해야 하지만 남북한 간의 독자적인 의사소통 채널과 레버리지를 버린 것은 안타깝다. 일본에 과거를 잊지 말라고 상기하는 일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했다.

외교안보 전략의 수정은 기존 정책의 무시나 전면 부정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정책의 추진 방향, 우선순위, 추진 방법과 시기를 재조정하는 섬세한 공학에 의해 가능하다. 오히려 정치적으로 반대편에 선 이도 수긍하는 역발상이 필요하다.

보수정부가 대북 포용정책을 펴면 신뢰할 수 있다. 중국에 대해 전향적 태도를 취해도 주변국이 의심하지 않는다. 보수적인 이명박 정부가 미국이나 일본에 쓴소리를 한대도 상대방이 뒤돌아서진 않는다. 역발상을 통해 정치적 반대세력을 잠재우고 국민의 흥미를 유발하라는 건 지나친 주문일까.

셋째, 폭넓은 의견 수렴이 필요하다. 전문가의 지혜와 관료의 경험을 충분히 활용해야 한다. 전략 부재의 예스맨이나 정부 정책을 선전하는 나팔수보다는 반론과 의문을 제기하는 전문가 집단이 애정 어린 비판을 할 수 있는 담론의 장을 마련해야 한다. 듣는 귀가 있어야 이야기할 맛이 날 게 아닌가.

외교 구심점 세우고 비판 수용을

그러자면 오전 7시부터 오후 11시까지 일만 하는 체제보다는 세상이야기를 듣고 공론을 수렴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또 자신의 목소리를 가지면서도 정책 방향을 수정할 수 있는 유연성이 보장돼야 한다. 지나친 원칙의 고수는 결국 외교적 대응의 강박관념을 키우고 외통수를 두게 된다. 공세적인 외교뿐만 아니라 뒤로 빠질 퇴로도 마련할 줄 아는 여유가 필요하다. 여론을 무시해도 죽고, 여론에 편승해도 죽는다.

이제라도 현 정부는 외교안보 이슈에 첨예한 위기의식을 가지고 예리한 판단을 내리길 기대한다.

박철희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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