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기부자를 신나게 하는 사회라야 따뜻해진다

  • 입력 2008년 7월 17일 22시 58분


김도연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이 그제 대학에 많은 기부금을 낸 인사들을 위해 마련한 오찬에서 기부자들은 “우리 사회가 기부하기에 여러 가지로 불편한 사회”라고 입을 모았다. 절차도 까다롭지만 기부자들이 혹시 부정한 방법으로 돈을 번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 기부를 받고서도 고마워하지 않는 풍조 등이 기부를 망설이게 한다는 것이다. 한 대학에 31억 원을 내놓은 기부자는 “부정한 돈 아니냐”는 악의적인 댓글에 마음이 상했다고 토로했다.

우리나라의 기부 문화는 아직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들처럼 일상화된 미덕으로 자리 잡지 못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기부는 시장과 정부의 손길이 미치지 못하는 그늘진 곳을 감싸 안음으로써 더불어 사는 공동체의 안전판 역할을 한다. “부자인 채로 죽는 것은 정말 부끄러운 일”이라고 한 철강왕 카네기의 말처럼 나눔의 문화가 더 활성화돼야 한다.

그러자면 기부를 받는 측의 인식과 태도부터 달라져야 한다. 감사할 줄 알고, 받은 돈은 정말 의미 있는 곳에 한 푼의 낭비도 없이 사용함으로써 기부자의 뜻이 두고두고 빛나도록 해야 한다. 피땀 흘려 모은 재산을 자식에게 주지 않고 기부했더니 골치 아픈 법률적 뒤치다꺼리와 음해성 구설수나 돌아오고 의혹의 시선까지 뒤따른다면 누가 마음과 지갑을 열겠는가.

미국의 대학들을 보면 기부자에게 진정으로 고마워하고 오래오래 추앙하는 전통과 문화가 확립돼 있다. 하버드, 예일, 스탠퍼드, 프린스턴대처럼 기부자의 이름을 따 교명(校名)을 짓고, 후손들의 입학에도 혜택을 준다고 해서가 아니다. 대학과 공동체의 자세부터 다르다. 이러니 등록금 의존 비율이 30∼50%에 지나지 않는데도 한 세기가 넘도록 세계의 명문대 소리를 듣는 것이다.

월가의 전설적인 투자자 워런 버핏은 “돈을 책임 있는 곳에 기부하는 것이 돈을 많이 버는 것보다 훨씬 힘들다”고 했다. 그럴수록 기부자들이 자부심을 가질 수 있도록 사회가 그들을 대우해야 나눔과 인정(人情)이 솟구치는 따뜻한 사회가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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