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주성하]北‘통미봉남’이 통하는 이유

  • 입력 2008년 7월 19일 03시 00분


금강산 관광객 피격 사망사건 이전까지만 해도 북한 관련 언론 보도의 상당수는 심각한 식량 사정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5, 6월에만 20만 명에서 30만 명이 굶어 죽을 것이라는 보도도 나왔다.

이런 가운데 정부는 6월 초 북한 측에 옥수수 5만 t 지원 의사를 내비쳤다가 거절당했다. 하지만 아직까지 북한에서 대량 아사(餓死)가 발생했다는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오히려 이해하기 힘든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북한 내부 소식통은 5월 말부터 가정에 된장과 간장이 공급되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장을 만드는 공장에는 옥수수와 콩 같은 원료도 충분히 공급됐다고 한다. 10여 년간 외부 지원을 받아오면서도 엄두를 내지 못했던 일이다. 남한의 지원이 끊긴 지금 무슨 여유가 생긴 것일까.

5월 초 한때 1kg에 북한 돈 4200원(한화 약 1300원)까지 올랐던 쌀값은 2300원 정도로 유지되고 있다.

기차 노선 중 가장 긴 평양∼온성 노선의 경우 최근 연착 시간이 불과 5시간 안팎이라고 한다. 1980년대 말과 비슷한 수준이다. 이 노선은 24시간 정도 걸리지만 2000년 1월에는 무려 23일이나 걸리기까지 했다.

몇 년째 멈춰 섰던 흥남 비료공장에서는 최근 질안비료가 생산되면서 장사꾼들이 농촌지역을 돌면서 이 비료를 팔고 있다고 한다. 북한 당국은 주민 강연을 통해 앞으로 연간 70만 t의 비료를 생산할 수 있다고 큰소리친다.

이렇다고 해서 북한에서 아사 위기가 끝났음을 의미하지는 않지만 남측의 비료와 식량 지원이 끊긴 북한에서 일어나는 일치고는 뜻밖이다. 북한 정권이 한동안 통미봉남(通美封南) 정책을 이어갈 수 있다는 징후라고도 볼 수 있다.

정부는 북한의 이런 움직임을 알고나 있는지 모르겠다. 옥수수 지원만 해도 달라는 말도 없고, 또 무시까지 당하면서도 기어코 “주겠다”고 했다가 지금은 “검토하겠다”고 방침을 바꿨다.

북한의 태도는 변화가 없는데 나 홀로 오락가락 행보를 보이고 있는 정부의 대북정책은 많은 이에게 ‘과연 정부의 대북정책이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는 의구심만 낳을 뿐이다.

대북정책 수립은 북한 사정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기반으로 해야 한다.

또 일단 원칙을 세웠으면 일관되게 견지해야 한다. 더는 상황에 따라 허둥지둥하는 아마추어 같은 모습을 보이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에서 하는 말이다.

주성하 국제부 zsh7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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