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최초로 달에 발을 디딘 것은 1969년 7월 20일. 39년이 지난 지금도 아폴로 11호 달 착륙을 할리우드에서 비밀리에 조작한 것이라는 음모론을 믿는 사람이 적지 않다. 2006년 여론조사에서 미국 대학생의 37%가 달 착륙을 ‘의심스럽다’고 응답했을 정도다.
2001년 9·11테러 때도 음모론이 무성했다. 음모론은 테러조직 알 카에다가 국방부 청사와 세계무역센터를 공격했다는 정부 공식 발표를 믿지 않았다. 미국 정부가 테러 공격을 사전에 알았거나 유도했다는 식이다. 음모론을 뒷받침하는 듯한 단서와 증언들이 계속 나왔다.
결국 2002년 11월 진상 규명과 제2의 테러 방지책을 마련하기 위해 토머스 킨 전 뉴저지 주지사를 위원장으로 하는 ‘9·11 위원회’가 구성됐다. 객관성을 위해 현역 정치인은 위원회에서 배제됐다. 위원회는 전현직 대통령을 포함해 1200여 명을 조사하고 250만 쪽 문서를 검증해 보고서를 제출한 뒤 20개월 만에 활동을 끝냈다.
보고서는 9·11테러 징후가 빌 클린턴 정부 시절부터 있었지만 ‘상상력의 실패’로 막지 못했다고 결론지었다. 정부와 의회는 국토안보부 창설 같은 재발 방지책을 마련하고 조사활동을 매듭지었다. 정권을 잃은 민주당의 훼방도 별로 없었다. 책임 있는 정당과 정치인이 어떻게 음모론에 대처하는지를 보여준 사례다.
우리 정치는 음모론 수준에도 못 미치는 괴담에 발목이 잡혀 있다. 미국 쇠고기 수입 재개는 노무현 정부가 시작했다가 마무리 짓지 않고 떠넘긴 것을 이명박 정부가 어설프게 처리하다 사고를 친 것으로 봐야 한다. 따지자면 여야 모두에 책임이 있다.
그런데도 여야는 중지를 모아 광우병 괴담의 허구를 가려주기는커녕 미국 쇠고기 협상 국정조사에 누굴 증인으로 부를지를 놓고 다투고 있다. 진상 규명보다 서로 자기들 쪽에 유리한 결론을 끌어내려는 정략이 앞서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광우병 괴담은 모른 체하면서 ‘언론 장악 음모론’을 들고 나왔다. 이명박 정권의 언론장악 음모를 중단시키겠다며 좌파단체들과 연대해 촛불시위까지 벌였다. 대통령이 자신에게 우호적인 인사를 KBS 사장에 임명하면 언론이 장악되는가. 그렇다면 민주당은 정부가 인사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모든 언론에 ‘낙하산’을 내려 보낸 김대중 노무현 정권이야말로 언론을 장악했다고 인정하고 반성해야 한다. 더군다나 노무현의 낙하산이 아직도 KBS 사장 자리에 버티고 있지 않은가.
정연주 KBS 사장이 자신을 구해주겠다며 찾아간 민주당 언론장악저지대책위원들과 만나 활짝 웃었다. 5년 동안 불공정 방송을 해오다 이제 와서 공정방송을 위해 임기를 보장하라는 것도 말이 안 되지만, 자신을 낙하산으로 내려 보낸 정권의 정치인들과 손잡는 것은 공영방송 사장으로서의 부적격 사유를 추가하는 처신일 뿐이다.
괴담이나 음모론을 이용해 정치하면서 세비나 챙길 게 아니라 경제와 민생부터 챙기는 정치를 하라고 주문하고 싶지만 역시 쇠귀에 경 읽기(우이독경·牛耳讀經)인가.
권순택 논설위원 maypol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