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낙인의 법과 사회]국가가 국민을 못 지키면

  • 입력 2008년 7월 29일 03시 00분


국가의 존재 이유는 예나 지금이나 국민의 생명 신체 재산의 보전에 있다. ‘자유 아니면 죽음을 달라’는 근대 시민혁명 이후의 명제는 국가로부터의 소극적인 안전과 자유를 의미하는 야경국가(夜警國家)로 한정된다. 하지만 20세기 이래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적극적으로 보장하기 위해 국가의 개입을 정당화하는 사회복지국가로 진화한다.

오늘날 국가적 위기와 국민적 위험이 일상화됨에 따라 국민의 삶에서 국가의 적극적 개입은 더욱 증대할 수밖에 없다. 특히 우리나라는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로 급격하게 진입하는 과정에서 사회적 위험에 대한 적응력의 한계를 드러낸다. 남북 분단의 특수상황 속에서 성장지상주의에 매몰돼 국민소득 2만 달러, 세계 13위의 경제대국에 어울리지 않는 현상이 속출한다.

안보 제1주의를 표방하는 나라에서 북한군에 의한 금강산 관광객의 피살, 해병대 초소 붕괴로 인한 장병 사망 사건이 발생했다. 사회적 위험에 대한 부실한 적응력은 태안 앞바다의 기름 유출 사고, 국보 제1호 남대문의 소실, 고시원의 대규모 인명 참사로 이어진다.

금강산 피격 사건은 묘하게도 대통령이 제18대 국회에서 첫 시정연설을 하는 날 새벽에 일어났다. 군사분계선 북쪽에서 선량한 시민에게 가해진 총격이 있은 후 8시간 30분 만에 대통령에게 보고됐다. 그러니 오후에 행한 국회연설에서 새로운 상황에 따른 정부의 입장이 제대로 표명될 수가 없었다. 청와대의 위기관리 시스템에 허점이 드러난 셈이다.

뒤늦은 폭우로 인명과 재산 피해가 속출한다. 해마다 반복되는 현상이지만 위험을 최소화하려는 인식과 노력이 부족하다. 그 와중에 ‘무적 해병’은 전투가 아니라 자신이 근무하는 초소에서 꽃다운 청춘을 마감했다. ‘가고 싶은 군대, 보내고 싶은 군대’를 표방하는 군에서 발생한 참사에 국민은 또 한 번 분노하고 좌절한다. 1자녀 가정이 보편화된 상황에서 사랑하는 아들을 군에 보낸 부모의 안타까운 마음을 헤아려야 한다. 이래서야 누가 안심하고 자녀를 입대시키겠는가. 군복무라는 공법상 특수신분관계를 충직하게 수행하는 장병을 보호하지 못한 국가의 책임이 무겁다.

국가는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해 주는 대신 국민에게 의무를 요구한다. 국민개병제는 국방의무의 산물이다. 국가보위에 대한 인식 부족을 탓하기 이전에 국민의 불안을 해소할 의지와 능력을 보여줘야 한다. 국군의 전투력 현대화 작업은 장병이 안심하고 군무에 임할 수 있는 제도 개선으로부터 비롯돼야 한다. 병영환경은 적어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수준으로 끌어올려야 한다. 국민의 허리띠를 졸라매서라도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방예산의 실질적 증가도 필요하다.

문화재의 허술한 관리가 초래한 국민의 정신적 충격은 물질적 보상이 불가능한 문제다. 산업화시대의 구로동 ‘닭장이나 벌집’을 연상케 하는 고시원은 고단한 서민의 삶의 보금자리지만 대형참사의 시한폭탄을 안고 있다. ‘다중이용업소의 안전관리에 관한 특별법’에서 주거시설로 확인받지 못한 고시원은 스프링클러도 없다. 법적 흠결이 화를 불러왔다.

사회 곳곳에 도사린 위험은 언제든지 재앙을 초래할 수 있다. 국가와 사회에 밀려오는 위기와 위험은 전통적인 안보뿐 아니라 일상적 국가생활에서 총체적인 사회안전망의 확충을 요구한다. 안전에 대한 소홀함의 대가가 남의 것으로 머물지 않고 우리 각자의 삶 속으로 스며들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생명을 허무하게 앗아가는 일이 재발해서는 안 된다.

성낙인 서울대 교수·헌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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