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은 지구촌 우애의 제전
기이하게도 4년마다 뜻밖의 일이 벌어진다. 외계인의 시선으로 볼 때 놀랍게도 이 작은 별에서는 만연한 재앙과 극심한 재난을 갑자기, 그리고 말끔히 잊어버린 듯 한 도시에 모여서 뛰고 달리면서 함성을 지른다. 잘했다고 해서 전 지구적 차원의 권력과 영향력을 얻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아무래도 이상한 일이다. 지구인은 오랫동안 ‘우애와 친선의 제전’이라고 불러 왔다. 그 제전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외계인만 이 현상을 낯설게 여기지는 않는다. 지구촌의 일부 사람도 전쟁과 폭력과 재난 때문에 대체로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의 생명이 제대로 건사되지 못하는 와중에 갑자기 한 달 정도 모여서 운동회를 하는 모습을 낯설게, 더러는 매우 부정적으로 본다. 나라끼리나 한 나라 안에서나 약육강식이 ‘제1법칙’으로 통용되는 이 시련의 21세기에 갑자기 ‘우애와 친선의 제전’을 벌이는 데 당혹스럽기도 하다.
과연 그것뿐일까? 우선 매우 소극적인 차원에서 생각해 보자. 올림픽이 없다면 이 세계는 그야말로 악몽의 연속뿐이다. 올림픽이 없다면 우리가 나날이 보고 듣는 얘기는 온통 약육강식의 혈전뿐이다. 실제로 ‘혈전’이 벌어진다. 세계를 주름잡는 사람들이 ‘우애와 친선의 제전’이란 곳에 와서 온갖 형태의 삼엄한 경호를 받으면서 귀빈석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있는 모습이 조금 간지럽기는 하다.
그러나 수많은 선수와 팬에게서 올림픽을 빼앗아 버린다면 악몽도 그런 악몽이 없을 것이다. 그러니까 월드컵을 포함하여 올림픽과 같은 대규모 스포츠 대회를 바라볼 때는 이젠 좀 더 다양하고 적극적인 시선이 필요하다.
이제 적극적인 시선으로 2008 베이징 올림픽을 상상해 보자. 예전과는 사뭇 다른 풍경이 벌어질 것이다. 선수들은 4년 동안 흘린 땀의 소중한 결실을 바라고 참가국은 더 많은 메달로 이른바 국위를 선양하는 모습을 그린다. 몇몇 선수가 아쉬운 결과에 멈추거나 메달 수가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 해도 과거처럼 ‘매국노’ 운운하면서 거칠게 비난하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다.
베이징까지 진출했다는 것만으로도 우리의 젊은 선수들은 귀한 성취를 이룬 셈이다. 성적과 메달은 다음 문제다. 그야말로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의 넓은 마음이 우리에게는 절실하다. 비인기 종목 선수나 약소국 선수의 노고에 대해서도 아낌없는 박수가 터져야 한다. 진정한 박수는 악조건 속에서 최선을 다한 선수 머리 위로 폭포수처럼 터져야 한다.
최선을 다한 선수가 진정한 승자
다시 외계인이 되어 보자. 4년 내내 다툼만 하던 지구인이 그나마 한 달쯤 모여서 ‘비폭력의 경쟁’을 벌인다. 메달 수를 집계하고 이긴 자가 영광을 차지하지만 그것만이 전부는 아닌, 올림픽이라는 제전이다. 4년 내내 올림픽을 할 수는 없지만 이런 대회라도 있어서 그나마 숨통을 틔운다.
지구 곳곳에 어떤 나라가 있는지 알기도 하고, 악조건 속에서 최선을 다한 선수가 마치 자기네 인생과 다를 바 없어서 아낌없이 서로 격려하는 지구인을 보면서 혹시 외계인은 ‘지구도 어쩌면 살 만한 곳이군’ 하고 생각하지 않을까. 바로 그런 올림픽이 되어야 한다.
정윤수 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