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는 서울대가 교육과학기술부의 WCU(World Class University·세계적 수준의 연구중심대학) 프로젝트 대상에 선정되기 위해 융합학과 신설에 적극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본보 7월 28일자 13면 참조
정부는 기술경쟁력을 높이려면 첨단 학문분야에서 대대적인 학과 간 통섭(융합)이 필요하다는 취지로 융합학과 신설 및 해외석학 영입에 8250억 원의 예산을 지원키로 했다. 이에 따라 서울대 공대는 다음 달 교과부 예비 계획서 제출을 앞두고, 실력 있는 평교수 20명으로 WCU 추진위원회를 구성해 연일 회의를 진행하고 있다.
교과부가 예시한 바이오공학, 인지과학 등 첨단 학문분야는 자연과학, 공학, 사회과학 등 다양한 학문 간의 통섭을 전제로 할 때 제대로 발전할 수 있다는 점에서 서울대의 이번 조치는 환영할 만하다.
하지만 융합학과를 둘러싼 대학가의 현실이 녹록지 않다. 우선 교과부가 예시한 융합학문 분야가 이공계에만 집중돼 있어 다른 학문분야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경영대와 인문대는 예산지원액이 가장 많은 융합학과 개설(WCU 1유형)에 대해 제안조차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학과 이기주의 풍토가 강한 한국 대학사회에서 교수들이 신설 학과로 적을 옮기기를 꺼리는 것도 융합학과 추진을 위해 넘어야 할 벽이다. 한 단과대학장은 “교수들이 기존 학과에서 떠나고 싶어 하지 않아 이를 강요할 생각이 없다”며 “다른 단과대에서 융합학과 제의가 오면 협조는 하겠지만 직접 나설 생각은 없다”고 귀띔했다.
교과부가 WCU의 대학선정 작업을 너무 서두르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교과부는 올해 6월 WCU 사업을 공고한 뒤 불과 두 달 만인 8월 20일까지 각 대학으로부터 예비계획서를 제출받기로 해 ‘번갯불에 콩 구워 먹기’라는 비판을 받았다.
교과부의 WCU 사업은 학문 통섭이라는 거대한 흐름에서는 분명 올바른 정책방향이다. 하지만 정책 당사자인 교수들의 현장 여론을 제대로 살피지 못한다면 실패할 수밖에 없다. 단기적인 성과에 얽매이지 말고,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격언을 되새겨 봐야 할 때다.
김상운 사회부 su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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