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백성기]과학은 사람이다

  • 입력 2008년 7월 30일 02시 58분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면서 교육과학기술부가 중점적으로 추진한 사업 중 하나가 정부출연연구소(출연연) 구조조정이다. 일부 출연연을 대학에 통합 또는 연계시키겠다는 구상인데, 철저한 준비 없이 성급하게 추진하는 바람에 해당 출연연 연구원들이 크게 동요하고 있다. 급기야 피켓을 들고 거리에 나서기에 이르렀다. 마침 쇠고기 촛불시위에 가려 크게 주목받지 못한 채 표면적으로는 가라앉았지만 불씨는 쉽게 꺼지지 않을 듯싶다.

새 정부가 새로운 과학기술정책을 입안하고 추진하기 위해 산하의 싱크탱크인 출연연의 위상과 역할을 재조명하고 변화를 모색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번의 출연연 통합 논란은 핵심에서 크게 벗어났다.

우리나라가 선진복지국가로 도약하기 위해 필요한 과학기술은 무엇이며, 이를 어떻게 확보해 나갈 것인가. 이 과제는 과학기술계나 교과부만의 일이 아니라 세계 일류국가로 가기 위한 이 시대의 중심 과제다. 이제는 우리에게 필요한 과학기술, 좀 더 정확히 표현하면 창의적 원천기술을 우리 손으로 직접 만들어 내야 한다. 필요한 기술이 우리에게 없으면 사들이고, 안 되면 베끼거나 모방하고, 그도 어려워지면 중국 동남아로 옮겨가면서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해서도 안 되고, 해본들 별 이득도 없다.

창의적 원천기술 만들어 내려면

과학기술 개발의 각 주체가 우리만의 창의적 원천기술 확보를 위해 그 역할과 기능을 재정립해야 할 때다. 그 특성과 전략적 가치를 살려 기본인력과 장비를 제대로 갖추고 각 주체 간의 협력을 강화해 효용성을 극대화해야 한다.

대학과 기업의 역할은 비교적 명확해서 큰 논란이 있을 수 없겠으나 국가 과학기술 개발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20여 개의 출연연에 대해서는 그 역할을 분명히 정립시키고 차별적 기능을 확보해야 한다.

출연연의 역사는 4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산업화에 필요한 기술을 확보하기 위한 전초기지로서 다수의 출연연이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을 필두로 속속 설립되었다. 선진기술의 도입, 적용, 기업화 연구에 집중해 반도체 섬유 건설 조선 중화학 철강 등 주요 산업의 태동과 성장을 선도했다.

그러나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기업연구소의 역량이 비약적으로 성장함에 따라 출연연은 새로운 국가 성장동력을 모색하는 추적연구에 역점을 두게 됐다. 아울러 연구기능이 극히 초보단계에 있던 국내 대학들의 기본적인 연구체제와 역량을 육성하기 위한 정부 지원의 창구 역할을 담당했다. 이에 힘입어 국내 주요 대학들은 최소한의 연구역량을 갖출 수 있었고, 국제 학술활동 면에서도 괄목할 만한 신장을 이룰 수 있었다.

따라서 기업과 대학이 자력으로 연구역량을 갖추어 가고 있는 지금, 출연연은 그 본래의 기능을 정립할 절호의 기회를 맞았다고 할 수 있다. 과거처럼 정부 연구비 확보를 위해 대학과 경쟁하면서도 내용면에서는 여전히 추적연구, 응용개발 연구에 머무른다면 출연연의 역할과 효용성에 대한 비판적 논란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대학실험실과 기업연구소에선 확보하기 어려우면서도 국가적으로 필요한 원천기술이나 공공성이 큰 대형 복합기술에 도전할 수 있도록 운영체제의 변화를 모색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독일이 자랑하는 막스플랑크연구소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연구소는 1911년 카이저-빌헬름 재단으로 출발해 1947년 지금 이름으로 개명하고, 현재 독일지역에만 80여 개의 연구소를 둔 명실 공히 세계 최고의 기초과학연구기관으로 발전했다.

막스플랑크연구소는 독일 대학의 구조적, 기능적 특성 때문에 감당하기 어려운 장기적이고 규모가 큰 융합형 최첨단 연구를 지향한다. 정부는 기능과 역할에 크게 관여하지 않는다. 또 국적을 불문하고 다양한 분야에서 최고의 두뇌를 유치해 그들의 자유로운 연구 활동을 보장하고 필요한 재원을 장기간에 걸쳐 안정적으로 지원한다. 이런 운영체제의 토대 위에서 ‘과학은 사람이다’라는 기본철학을 철저히 구현함으로써 2, 3년마다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는 세계 최고의 연구 집단으로 인정받고 있는 것이다.

막스플랑크연구소 눈여겨보라

출연연의 역할, 기능, 혹은 통합을 논의하기에 앞서, 우선은 출연연에 몸담고 있는 6000여 명의 석박사급 고급 두뇌들의 애환과 열망에 귀 기울이고 그들의 잠재 역량을 어떻게 창의적 원천기술 개발로 이어갈 수 있을 것인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그들이 연구실을 떠나 피켓을 들고 다시 거리에 나서지 않도록 하자.

백성기 객원논설위원·포스텍 총장 sgbaik@postech.ac.kr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