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덕 칼럼]학교 가기 싫은 사람 모여라

  • 입력 2008년 8월 1일 03시 04분


교감 승진을 앞둔 교사들을 대상으로 선진국 교육 경쟁에 대해 강의한 적이 있다. 강의실에 들어가기 전 감독관청 담당자는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며 “선생님들이 어떤 강의를 제일 좋아하는지 가르쳐 드릴까요?” 하더니 말했다. “종치기 전에 일찍 끝내는 거랍니다.”

‘전교조 교육’에 파문 선고

더 황당한 일은 다음에 벌어졌다. 내가 입을 연 지 얼마 안 돼 상당수 교사가 졸기 시작한 것이다. 내 탓이오 하면서도 나는 우리 학생들이 얼마나 불쌍하고 또 대단한지 속으로 가슴을 쳤다.

어쩌면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의 말이 맞는지 모른다. 경쟁 없는 행복한 학교를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 말이다. 여기엔 학생은 물론 교사도 포함된다. 똑같이 가르쳐도 못 알아듣는 학생들이 있고, 교사가 열심히 가르치든 안 가르치든 월급은 같다. 명문대 입학정원은 정해져 있는데 해도 안 되는 아이들에게 0교시나 우열반 수업은 고문이다. 잠 좀 자자고 외치는 아이들 실컷 자게 하면서, 밥 먹을 때는 고르게 갈라 먹는 공동체를 교육하는 게 바람직하지 않은가?

전교조의 이런 논리는 한 아이도 뒤처지면 안 된다는 미국 교육법(No Child Left Behind)에 끈질기게 반대하는 그 나라 노조교사들의 주장과 맞닿는다. 싱크탱크인 미국기업연구소(AEI)의 찰스 머리도 최근 “모든 사람이 똑똑한 건 아니라는 사실을 외면하는 게 교육의 진짜 문제”라고 했다. 어릴 때의 지능이 평생의 사회경제적 지위를 결정한다는 저서 ‘벨 커브’로 논란을 일으켰던 저자가 바로 그다.

전교조나 머리의 말이 정말 옳다면 똑똑하지 못한 사람은 굳이 머리 싸매고 공부할 이유가 없다. 성적이 좋아질 리도, 사회에 나가 성공할 리도 없기 때문이다. 괜히 학생 간, 교사 간 경쟁만 일으켜 각박한 학교를 만들 게 아니라 “공부가 다냐”며 “학력철폐!”를 외쳐야 옳다. 대체로 세계의 좌파적 교사들은 경쟁과 성적표가 아이들의 학습 동기를 빼앗는다는, 한물간 1970년대식 진보교육 논리에 사로잡혀 있다.

그러나 사람은 믿고 싶은 것만 믿는다. 무엇을 믿느냐에 따라 결과 또한 달라지는 게 삶의 묘미다. 미국 스탠퍼드대 심리학 교수인 캐럴 드웩은 30년 연구 끝에 “사람이든 사회든 능력은 더 계발될 수 있다고 믿는 ‘성장 마인드’를 지닌 쪽이 실제로 발전한다”고 밝혀냈다. 우리는 30년씩 연구 안 해도 다 아는 얘기다. 공부를 잘하든 못하든 학교 때 열심히 하던 사람이 나중에도 열심히 살고, 학교 때 뺀질이는 커서도 마찬가지다.

성장 마인드를 길러줘야 하는 데가 바로 학교인데 우리의 전교조는 너무도 오래 거꾸로 갔다. 아이들에게 노력하면 나아질 수 있다는 희망과 용기 대신 앞선 쪽에 대한 증오와 반역을 주입했다. 교육개혁 성공의 관건이 유능한 교사에게 달렸다는 실증적 연구결과가 너무도 많이 나와 있는데 전체 교사의 20%도 안 되는 전교조가 교사평가를 결사반대한다.

지난달 30일 서울교육감 선거 결과는 ‘전교조 교육’에 대한 파문 선고였다. 내 아이가 특목고, 자립형사립고는 못 가더라도 공부 안 가르치고, 못 가르치는 교사만은 없어야 한다는 학부모들의 절규다. 내 아이를 인질로 맡겨 놓고는 혹여 미움 살까 불평도 못하던 학부모들이 이제야 전교조를 거부할 기회를 잡은 것이다.

수월성 경쟁은 교사부터 시켜야

공정택 교육감은 당선 첫마디로 경쟁과 수월성 교육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 그러나 경쟁은 학생 아닌 교사부터 시켜야 한다. 평가 기준은 뒤처진 아이, 뒤처진 학교를 얼마나 향상시켰느냐가 돼야 마땅하다. 학교 선택권 역시 학교는 뒷짐 지고 있다가 뛰어난 학생만 뽑아 편하게 가르칠 게 아니라, 치열하게 경쟁하는 학교를 학생들이 택하게 해야 한다.

일각에선 ‘강남 교육감’이 탄생했다며 갈등을 부추길 태세지만 그런 분들을 위해 공 교육감이 마련한 제도가 학교 선택제다. 학교 가기 싫은 사람, 공부하기 싫은 사람은 그런 교사와 학생들을 위한 학교에 가면 된다. 괜히 공부하고 싶은 사람들 앞길까지 막지 말고.

김순덕 편집국 부국장 yu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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