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파 언론이 주로 이념적 이유로 기업을 힘들게 한다면 금전 갈취를 목적으로 괴롭히는 매체는 더 많다. 과거 여기저기 보도됐거나 증권가 정보지에 나도는 ‘아니면 말고’ 수준의 내용을 짜깁기해서 보도하겠다며 입막음의 대가로 금품을 요구한다. 단골메뉴는 최고경영자(CEO)에 대한 인신공격이나 경영차질 루머다. 하루가 멀다 하고 이런 공갈협박에 시달리는 기업 관계자들의 하소연을 듣다 보면 안쓰러운 생각도 든다. 정보화의 그늘인 ‘공룡 포털’은 생업형(生業型) 사이비 언론이 활개를 치도록 날개를 달아주었다.
정부든 정치권이든 기업이든 명백히 잘못하면 비판을 받아야 한다. 그것이 언론의 중요한 책무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런 원칙이 ‘의식 과잉’에 기인하거나 생계형 갈취를 위한 신문이나 방송, 잡지나 인터넷의 무책임한 과장 왜곡보도를 정당화하는 방패막이일 수는 없다. 언론자유가 날조나 왜곡의 자유를 의미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그런 말이나 글은 사회적 흉기(凶器)다.
언론계에 몸담고 있는 사람이라면 항상 오보(誤報)의 두려움에 떤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더라도 사람이 하는 일이기 때문에 내용을 잘못 알았거나, 한순간 ‘뭔가에 씌어서’ 잘못 보도할 수도 있다. 특종과 오보가 종이 한 장 차이일 때도 적지 않다. 널리고 널린 언론사와 언론인의 질(質)을 가르는 핵심적인 차이는 취재의 정확성과 ‘게이트 키핑’의 엄격함이다. 때로 세계관의 차이도 중요하지만 여기에 비하면 훨씬 부차적이다.
하물며 개인이나 집단의 명예를 훼손하거나 사회적 혼란을 부추길 위험성이 있다면 설령 자신과 생각이 다른 대상이라도 더욱 철저한 확인을 거치는 것이 기본이다. 가슴이 뜨거워질수록 머리는 차가워져야 한다. 제대로 훈련을 거친 기자라면 이 원칙을 잊지 않는다. 하지만 이번 광우병 괴담(怪談)과 불법폭력시위를 둘러싼 일부 방송 및 신문의 허위보도나, 포털을 매개로 기업을 공갈쳐 뜯어먹고 사는 사이비 매체의 창궐은 ‘취재원칙 제1조 1항’조차 무시되는 우리 사회의 우울한 현주소를 보여주었다. 그것이 낳은 각종 사회경제적 후유증은 또 얼마나 컸나.
프랑스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의 표현을 빌리면 나는 펜을 칼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형태든 언론에 종사하는 사람이라면 함부로 휘두르는 칼이 타인을 해치고 결국 자신도 찌른다는 당연한 진실을 명심했으면 한다. 취재의 정확성에 대한 책임감과 비판대상의 공과(功過)에 대한 진지한 고민도 빼놓을 수 없다.
교묘하게 포장한 허위 정보로 쇠고기 광풍(狂風)과 혼란을 부추긴 그 수많은 말과 글의 책임은 누가 져야 할까. 그리고 이번 사태가 우리 사회에서 말과 글이 더는 거짓과 불법을 조장하고 선동하는 사회적 흉기가 되지 않도록 바로잡는 계기는 될 수 있을까.
권순활 산업부장 shkw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