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외교에 공짜는 없다. 독도를 봐준 대가로 미국은 어쩌면 더 많은 것을 바랄지도 모른다. 벌써 “이라크 파병 연장과 주한미군의 역할 변화를 요구할 것”이란 관측이 무성하다. 하지만 그 정도는 독도문제가 아니더라도 미국이 우리에게 협조를 요청할 수 있는 사안이다. 매사를 부정적으로만 볼 일은 아니다. 상대의 선의(善意)는 선의대로 받아들이자.
정작 걱정되는 것은 한일 간에 벌어질 제2라운드 외교전(外交戰)이다. 미국 때문에 1라운드는 그런대로 넘어갔지만 2라운드는 한층 어려운 싸움이 될 것 같다. 다음 달 도쿄에서 열릴 예정인 한중일 첫 정상회담과 독도문제가 맞물려 고도의 힘겨루기가 예상되기 때문이다. 3국 정상회담의 의미는 자못 크다. 잘만 하면 동북아에 새로운 평화와 협력의 기틀을 마련할 수도 있다. 중-일 사이에 끼인 우리로서는 그래 주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2004년에 회담을 처음 제안한 것도 우리였다.
더 걱정되는 2차 韓日외교전쟁
그럼에도 회담 성사 여부는 불투명하다. 독도문제로 나라가 들끓고 있는데 한국의 대통령이 선뜻 일본행 비행기에 오를 수 있겠는가. 일본이 어떻게든 ‘성의 표시’를 해준다면 또 몰라도…. 지금 일본 정부는 중학교 사회교과서에 이어 고등학교 공민교과서 학습지도요령 해설서에까지 독도 영유권을 명기하기 위해 작업 중이다. 빠르면 10월 중 확정된 지침을 발표할 예정이다. 일본이 이 작업을 중단하겠다고 선언하면 분위기가 바뀌겠지만 후쿠다 야스오(福田康夫) 총리가 과연 그렇게 할까. 어림없는 소리다.
결국 우리로선 일본의 태도 변화가 없는 한 회담에 참가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정부 안에서는 “그래도 참석해야 한다”는 의견들이 있다지만, 일본이 고등학교 학습지도요령 해설서에까지 ‘독도는 일본 땅’이라고 못 박는 판에 참가를 고집할 수 있을까. 자칫하면 이 정권이 흔들릴 수도 있다.
한국이 참석하지 않으면 회담은 무산된다. 이는 일본으로서도 큰 부담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회담 불참 카드는 우리가 일본을 압박할 수 있는 주요한 지렛대이기도 하다. 권철현 주일(駐日)대사도 지난달 15일 일본 외무성을 항의 방문한 자리에서 이를 시사하는 발언을 한 바 있다.
그렇다고 불참이 우리에게 반드시 유리한 것만은 아니다. 우리도 회담 무산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자칫하면 덤터기를 쓸 수도 있다. 애초 우리가 제안한 회담이어서 그렇다. 어떻게 할 것인가. 중국을 업을 수밖에 없다. 중국이 나서서 일본을 설득해 최소한의 성의 표시(학습지도요령 해설서 독도 영유권 명기 유보)라도 하도록 해야 한다.
그게 여의치 않다면 중국과 우리가 손을 잡고 회담 장소를 베이징으로 바꿔야 한다. 어차피 3국이 돌아가며 회담을 열기로 했으니까 이번엔 베이징에서 하고 다음에 도쿄나 서울에서 하면 된다. 그러나 중국이 과연 우리에게 협조할까. 흔쾌히 우리와 손을 잡을까. 그래만 준다면 한국 외교의 승리가 되겠지만 쉽지 않은 일이다. 우리에겐 그럴 만한 외교력도 없거니와, 있다 한들 후진타오 주석이 부시 대통령처럼 발 벗고 나서주겠는가.
代案없는 동맹국 폄훼 어리석다
그래서 동맹은 소중한 것이다. 힘의 열세는 동맹과 숙련된 외교로 보완하는 것이 만고의 생존법칙이다. 아무런 대안도 없이 동맹국과 그 지도자를 폄훼하는 것은 현명치 못하다. 윈스턴 처칠은 제2차 세계대전 중 프랭클린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과 둘도 없는 사이였지만 가끔 의견 충돌이 있을 때면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동맹들과 싸우는 일보다 더 나쁜 일이 단 하나 있다. 그것은 동맹들 없이 싸우는 일이다.”(‘외교 이야기’, 최병구, 2007년)
좀 더 크게 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지금 전례 없이 어렵고 복잡한 외교환경 속에 놓여 있다. 동북아에 변환(變換)의 격랑이 일고 있는데 철지난 타성적(惰性的) 반미에 빠져 그나마 있는 동맹마저 등을 돌리게 해서는 생존을 보장받기 어렵다. 부시 대통령의 임기 중 마지막 방한으로부터 우리가 얻을 교훈이다.
이재호 논설실장 leejae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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