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이병기]시험대 위에 선 국민연금

  • 입력 2008년 8월 5일 02시 59분


일본의 독도 도발, 금강산 관광객 피격 사망 사건 등 국민의 관심을 집중시킨 사건이 잇따라 터지면서 중요한 사회적인 의제 하나가 조명을 받지 못한 채 지나갔다.

국민연금이 위험자산에 대한 투자를 대폭 늘리겠다는 뉴스다. 국민연금공단 박해춘 이사장은 지난달 29일 기자간담회에서 “6월 말 전체 운용자산(약 230조 원)의 17.5%인 주식투자 비중을 4년 뒤인 2012년 말까지 40%로 올리고 부동산 및 사회간접자본(SOC), 해외 자원개발 등 대체투자 비중도 2.5%에서 10%로 확대한다”고 밝혔다. 또 전체 운용자산 중 해외투자비중도 20%까지 높이겠다고 밝혔다.

박 이사장의 발언이 사회적 의제로 떠오르지 못한 것은 이 소식이 국민 생활에 즉각 영향을 주지 않기 때문이다. 인간은 먼 미래보다 당장 필요한 정보, 이성보다는 감성에 와 닿는 정보에 더 반응한다.

국민연금은 또 기금운용수익률을 현재보다 2%포인트 더 높이도록 목표를 바꾸겠다고 밝혔다. 현재 자산을 기준으로 1년에 4조6000억 원, 2012년 자산이 400조 원을 넘어서면 8조 원을 현재 수익률에서 추가로 벌어들인다는 뜻이다. 국민연금이 운용을 잘해 준조세를 낮춰주겠다는데 시비를 걸 사람은 없다.

많은 경제전문가는 국민연금의 주식투자 확대가 올바른 방향이라고 생각한다. 선진국 자산시장의 데이터는 장기투자일 경우 주식이 채권이나 부동산에 비해 가장 우월한 투자대상임을 입증해주고 있다.

하지만 사안의 중대성에 비해 진행되는 일련의 흐름이 왠지 불안하다.

첫째, 박 이사장은 기자회견에서 장밋빛 전망만을 강조했다. 하지만 고수익은 고위험과 동의어다. 역사적으로 주식시장이 10년 이상 저조한 실적을 거둔 적도 많다. 이렇게 되면 국민연금에 대한 신뢰가 흔들릴 수도 있다. 최악의 경우 고갈 시기가 앞당겨져 국민의 주머니에서 나가야 하는 돈이 증가할 수도 있다. 박 이사장이 이런 양면성을 정직하게 밝히지 않은 점에서 너무 빨리 가려는 ‘초조함’이 느껴진다.

금융전문가인 박 이사장에게 거는 기대는 크다. 하지만 ‘금융계의 코뿔소’로 알려진 그가 연금운용 전략 변화도 저돌적으로 추진하다가 탈이 나지 않을지 걱정이 된다. 4년 만에 주식투자를 두 배 이상으로 늘리겠다는 것도 너무 성급하다고 지적하는 전문가도 많다.

둘째, 방향이 맞는다고 모두 목적지에 도착하는 것은 아니다. 전 세계 금융시장에서 각종 펀드 간의 수익률 경쟁은 총칼만 안 들었지 피 튀기는 전쟁이다. 이기는 길은 정보전쟁에서 지지 않는 글로벌 네트워크와 투자 실력밖에 없다.

하지만 기금 운영인력의 질이 세계 또는 국내에서 최고인지에는 의문이 많다. 최근 인선 중인 국민연금 운영본부장의 최종 후보자로 거론되는 인사들의 능력에 대해 시장에서 의문을 표시할 정도다. 세계 최고의 전문가들이 국민연금에서 일할 수 있도록 인센티브 체계를 바꾸는 것이 결국 국민의 부담을 덜어주는 길이다.

셋째, 국민연금 운용에 대한 국민의 이해도를 높여야 한다. ‘방향이 맞으니 무조건 따라오라’는 식의 정책은 후유증을 남긴다. 투자결정 과정이 합리적이라면 운영 실적이 저조하더라도 국민이 이해하고 기다려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국민연금은 올 상반기 주식투자에서 이미 4조2600억 원의 평가손실을 냈다.

이병기 경제부 차장 ey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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