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둔도는 김정호의 ‘대동여지도’에도 조선 땅으로 기록돼 있었건만 2차 아편전쟁 직후인 1860년 청나라가 영국 프랑스 러시아와 ‘베이징 조약’을 맺을 때 러시아로 넘어갔다. 무능했던 조선 정부는 이런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다. 고종은 재위 20년(1883년) 서북경략사(西北經略使) 어윤중(魚允中)에게 “영토를 잘 살펴 바르게 하라”고 명하고 청에 반환을 요구했지만 실현되지 못했다. 한글로 ‘사슴+언덕+섬’인 이 황무지를 조선 농민들이 옥토로 만들어 1937년까지 한인들이 살았다.
▷후손들이 유능하고 힘이 있었다면 제국주의 시대 국경조약을 인정하지 않는 국제법에 따라 되찾을 수 있었을 것이다. 북한은 1990년 구소련과 국경조약을 맺으며 ‘베이징 조약’을 그대로 인정해 줬다. 국토도 제대로 지키지 못하면서 ‘강성대국’ ‘주체’를 외치는 북한이 안타깝다. 4년 전 동아일보 연재기사 ‘우리 땅 우리 혼-영토분쟁 현장을 가다’에 따르면 섬에는 아직 조선인들이 경작하던 밭이랑이 뚜렷했고 집터와 가마솥 놋그릇 항아리 파편까지 있었다. 2년 뒤 러시아는 섬 가장자리에 제방을 쌓고 군사기지로 만들어 버렸다.
▷북한과 러시아는 작년 말부터 두만강 17.5km 구간 국경선을 다시 긋는 재(再)획정 작업에 들어갔다. 강은 수위에 따라 땅이 변해 분쟁의 대상이 될 수 있다. 결국 실효적 지배가 관건이다. 러시아는 2003년부터 강변에 버드나무를 심는가 하면 2005년부터는 강둑을 쌓으며 국경 강화에 열을 올리고 있다. 북한이 나진 개발사업에 러시아 돈을 끌어들이기 위해 두만강 하구 일부 영토를 양보할지 모른다는 말이 나온다. 북한이 돈 때문에 조상의 혼이 서린 땅을 남의 손에 넘기지나 않을지 걱정이 크다.
허문명 논설위원 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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