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전화 통화를 한 검찰 간부에게 김옥희 씨 사건에 대해 묻자 이같이 심드렁하게 말했다. 민주당 등 야권에서 ‘언니게이트’라고 규정해 연일 포문을 열고 있다는 점에서 의외였다. 특수 수사에 일가견이 있는 데다 신중한 편인 그에게 “왜, 그렇게 생각하느냐”고 물어봤다. 그는 “등장인물의 면면이 게이트로 발전하기엔 너무 단출하다”고 말했다. 잠시 뜸을 들인 뒤 “게이트라고 언론에서 보도한 역대 사건 중 (청와대)민정에서 바로 넘긴 게 있더냐”고 되물었다.
기억을 더듬어 보면 권력형 비리를 뜻하는 ‘게이트’라는 표현은 한보 비리 사건 때 처음 등장했다. 김영삼 정부 말기인 1997년 한보그룹이 부도가 나면서 드러난 권력형 금융비리를 ‘한보게이트’라고 언론이 보도한 바 있다. 정·관·재계의 핵심부가 연루된 비리 사건의 배후에 김영삼 대통령의 아들 김현철 씨가 있다는 시중의 루머에 착안해 게이트라는 표현을 처음 썼다. 그 후 수사의 초점이 김현철 씨에게로 모아지면서 ‘현철게이트’라는 작명도 나왔다.
‘게이트 전성시대’는 단연 김대중 정부 때였다. 2000년부터 ‘정현준게이트’ ‘진승현게이트’ ‘이용호게이트’ ‘최규선게이트’가 꼬리를 물었다. 김대중 대통령의 세 아들이 이들 게이트에 직간접으로 연루돼 ‘홍삼게이트’ ‘게이트천국’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노무현 정부 때는 게이트에 오를 만한 사건이 오히려 드물었다. ‘오일게이트’ ‘신정아게이트’ ‘김상진게이트’가 있었지만 무게감이 떨어진다.
그러고 보면 ‘언니게이트’라는 야당의 작명에는 문제가 있다. ‘옥희게이트’라든지 ‘사촌언니게이트’ ‘사촌처형게이트’라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하다. 그러나 그렇게 표현하면 약발이 먹히지 않는다. 역대 게이트 중 대통령 부인의 사촌언니가 주역으로 등장한 사건은 눈을 씻고 봐도 없다. 그래서 사촌은 뚝 떼버리고 ‘언니게이트’로 이름을 붙인 작명자의 속내는 짐작이 간다.
게이트라는 작명 자체가 기발하긴 하지만 사실은 엉터리다. 그 원조는 36년 전 미국에서 일어나 대통령의 하야로까지 이어진 워터게이트(Watergate) 사건이다. 1972년 6월 닉슨 대통령의 재선을 위해 비밀공작반이 워싱턴의 워터게이트빌딩에 있는 민주당 전국위원회 본부에 침입하여 도청장치를 설치하려다 체포됐다. 처음에는 사소한 절도사건으로 시작했으나 워싱턴포스트의 햇병아리 기자 밥 우드워드의 끈질긴 취재로 닉슨 대통령을 비롯한 고위공직자들이 사건을 축소 은폐하기 위해 대책회의를 하고 거짓말을 한 것까지 밝혀져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다. 사건의 무대인 건물 이름에서 워터를 뚝 떼버리고 권력형 비리의 주인공 이름을 갖다 붙여 ‘××게이트’라고 하는 것은 침소봉대(針小棒大)를 노린 어설픈 작명들인 예가 많다.
검찰에 밝은 한 변호사는 최근 “두고 봐라. 이 사건이 게이트로 비화하면 내 손에 장을 지지겠다”고 장담하기도 했다. 그러나 검찰이 풀어야 할 의혹들은 여전히 남아 있다. 특히 김옥희 씨는 한나라당 공천이 끝나고 김종원 씨가 비례대표 공천에서 탈락한 뒤에야 그에게서 받은 수표 20억 원을 자신의 계좌에 넣었다.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렵다. 검찰 수사 과정에서 돈을 받았다가 돌려준 누군가가 튀어나올지도 모른다. 수사는 ‘살아있는 생물’과 같은 것이라 섣부른 예단은 금물이다. 수사결과를 지켜볼 일이다.
최영훈 사회부장 tao4@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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