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금융 계열사가 10개나 되지만 주력은 단연 우리은행이다. 옛 상업은행과 한일은행이 합쳐진 우리은행은 국민, 신한은행과 ‘한국 대표 은행’을 놓고 치열하게 경쟁할 정도로 고객 기반이 탄탄하다. 1만여 명의 행원들은 ‘민간인’이고 하는 일도 다른 은행과 다를 바 없다. 하지만 엄밀히 따지면 국영(國營) 은행이다. 2000년대 들어 부실 규모가 불어나자 정부가 약 8조 원의 공적자금을 투입하면서 은행의 신분이 바뀌었다. 현재는 예보가 우리금융의 일부 지분을 매각하고 남은 72.97%를 보유하고 있다.
이런 은행이라면 누가 봐도 민간의 품에 돌려주는 게 순리다. 정부는 물론이고 예보도 민영화라는 대전제에 한 번도 토를 단 적이 없다. 그런데도 말만 무성할 뿐 작업은 늘 제자리걸음이다. 이명박 정부 들어서도 금융위원회는 ‘우리금융 지분 매각은 시장 상황을 봐가며 단계적으로 할 것’이라고 애매하게 정리했다. 자투리 지분은 팔되 경영권과 직결되는 ‘50%+1주’는 계속 갖고 있겠다는 것이다. 눈썰미 밝은 전문가들은 “민간에 넘기고 싶지 않다는 속내”라고 해석한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 예보와 금융관료를 하나로 묶어주는 이해관계와 이들 간의 뿌리 깊은 공생(共生) 구조를 빼놓고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우선 예보 처지에서 우리금융은 놓쳐선 안 되는 중요한 일감이자 먹잇감이다. 금융시장이 정상화되면서 예보가 관할했던 금융회사들은 하나 둘 새 주인을 찾아 독립했다. 대형 금융회사 중 사실상 유일하게 예보의 통제권에 남아 있는 곳이 우리금융이다. 예보의 회수관리1팀은 주 업무가 우리금융 관련 사안의 처리다. 지분을 처분하고 나면 부서가 존재할 이유가 없어진다. 우리금융은 예보 퇴직자에게 전무 자리를 할애하고 있고, 사외이사 중 한 명도 예보 간부가 맡고 있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예보의 ‘높은 분’이 해외출장을 가면 그 지역의 우리은행 지점장이 접대하는 게 관행”이라고 전했다.
관료들도 민영화 시늉은 하지만 굳이 서두를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역대 예보 사장은 퇴직 관료나 관변 인사들 차지였다. 우리금융 지배권을 갖고 있으면 회장이나 은행장 선임 과정에서 영향력을 행사할 수도 있다. 민영화를 질질 끄는 폐단을 막기 위해 관련법에 명문화했던 지분 매각 시한이 올 3월 슬그머니 폐기됐다. 그 이유는 속셈이 빤한 관료들이 더 잘 알 것이다.
이런 사례가 어디 우리금융뿐이겠는가. 이 명박 대통령은 장관이 자기 분야의 공기업 개혁을 책임지라고 독려했지만 관료와 해당 공기업의 먹이사슬 고리를 끊지 못하면 대통령도, 장관도 허수아비나 마찬가지다. 정부는 오늘 ‘1단계 공기업 선진화 방안’을 발표한다. 민영화를 원치 않는 사람에게 민영화를 맡기는 한 아무리 그럴 듯한 청사진도 국민과 시장을 상대로 한 ‘쇼’에 불과할 것이다.
박원재 논설위원 parkw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