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여행을 좋아해도 어딜 가나 휴가객들로 붐비는 여름에는 어디로 떠나본 적도 없고 가고 싶어 한 적도 없다. 그런데도 남들 다 가는 여름휴가 한번 못 가다니 싶은, 공연히 억울한 마음과 손해를 보는 기분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대개는 한 8월 말쯤 휴가철이 다 지난 바닷가로 내려가 사나흘 쉬다 오고는 했다. 올해도 그럴 요량으로 여기저기 기웃거리다가 그냥 집에 눌러 있기로 마음먹었다. 그런 데에는 소설가 이청준 선생의 빈자리가 컸다.
올해는 부쩍 문학계 큰 어른들의 부고가 잦은 것 같다. 5월에는 박경리 선생과 홍성원 선생이 돌아가시더니 7월 마지막 날에는 급기야 이청준 선생의 부고 소식을 듣게 되었다. 안 써지는 원고를 붙잡고 있다가 슬그머니 일어나 상가에 갔다. 거기서 만난 선배들에게 실은 이청준 선생이 살아 계실 때 한 번도 뵌 적이 없다는 사실을 넋두리처럼 털어놓았다. 선배들이 쯧쯧, 혀를 찼다.
유난히 컸던 선배들의 빈자리
선생이 타계하였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지난해 세모에 선생께 우편으로 받은 마지막 소설집 ‘그곳을 다시 잊어야 했다’를 책장에서 꺼내 손닿는 데 두고는 내도록 바라보았다. 그때 이미 죽음을 예감한 선생은 그동안 책을 받았던 작가들, 특히 후배작가들에게 일일이 저자 사인을 해 보내셨다. 그 일이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원고를 마치고 책상을 정리하며 여름휴가를 갈까 어쩔까 망설이고 있는데 그 책이 눈에 들어왔다. 앞장을 넘겨 보니 단정하고 힘 있는 글씨체로 ‘조경란 글벗님께’라고 쓰여 있었다. 어딜 가고 말고 할 것도 없이 선생의 책을 손에 든 채 읽기 시작했다.
그러다 내친김에 지난번 시인 정현종 선생을 만났을 때 요즘 어떻게 지내시느냐고 물었더니 키케로의 ‘노년에 관하여’ 같은 책을 읽고 있지, 하며 허허 웃으시던 게 생각나 또 그 책을 찾아 읽기 시작했다. 키케로의 책을 읽다 보니 문단 어른들의 부음 소식을 접했을 때 잊고 있던 듯 유독 더 크게 느꼈던 존경심이나 그들의 부재에 대한 안타까움 같은 것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철학자 키케로는 인생의 마지막 시기에는 ‘영향력’이라는 열매들을 거두게 된다고 말했다. 그 영향력이라는 것은 이를 테면 길에서 양보를 받는 것, 사람들이 예의의 표시로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 조언을 받는 것 등을 말한다. 얼핏 생각하면 이런 것들은 사실 사소하고 하찮은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영향력이라는 것은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게 아니라 자신의 가치를 지키며 산 사람들만이 얻을 수 있는 노년의 열매라는 것이다. 그렇지, 하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어른들에게는 젊은이들에게는 아직 부족한 그 열매의 힘이 있었던 것이다. 자기 확신과 치우치지 않는 엄격함으로 이루어진, 그 배우고 닮고 싶은 열매 말이다.
책을 읽다 문득 고개를 들면 최근 우여곡절 끝에 손에 넣게 된 한벗 송하경 선생의 ‘默’이라는 글자가 눈에 들어온다. 더 가까이 보려고 아직 벽에도 걸지 않은 액자다. 그 앞에 쭈그리고 앉아 들여다볼 때마다 말하지 않고 침묵해야 할 때 침묵해야 하는 것이 군자의 도리, 사람의 도리라는 걸 배우게 된다. 그러다 문득 무슨 소리가 들려 한참 귀 기울여 보니 아니나 다를까 귀뚜라미 소리다. 말복 지난 다음 날 새벽이었다. 다른 어려운 일도 많았지만 무엇보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로 어려움을 겪은 여름이었다. 훗날 2008년 여름을 우리는 어떻게 기억하게 될까.
반성과 성찰 있어야 열매 맺어
많은 것은 지나가도 그냥 지나가지는 않는다. 반성과 회의와 성찰들. 그런 게 없다면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인생의 마지막 열매 같은 것은 얻을 수 없을 것이다. 쉽게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듯, 그래서 생각이라는 걸 하게 되듯 가끔은 촛불을 손에 들고 자신의 얼굴을 불시에 들여다볼 줄도 알아야 한다. 여름의 절정은 지나갔다. 사색하며, 이제 가을을 준비해야 할 때이다.
조경란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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