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오명철]그때는 그때의 아름다움을 모른다

  • 입력 2008년 8월 14일 02시 54분


한국인의 평균 수명이 처음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평균 수명을 넘어섰다. 보건복지가족부가 ‘2008 OECD 헬스 데이터’의 주요 지표를 분석한 결과 2006년 한국인의 평균 수명은 79.1세로 OECD 평균 수명인 78.9세보다 긴 것으로 나타난 것이다. 평균 수명이란 그해(2006년) 태어난 아기가 평균적으로 살 수 있는 기대 수명을 뜻한다. 이런 추세라면 올해 안에 한국인의 평균 수명이 80세를 돌파할 것으로 보인다고 한다. 최장수국인 일본(82.4세)과의 격차도 2001년 5.1세에서 2006년 3.3세로 줄었다. 한국인의 평균 수명은 24위인 미국(77.8세)보다도 길다.

수명 길어졌지만 노후대비 소홀

놀랍고 두렵다. 현재 한국의 사회 경제 복지 상황을 볼 때 수명의 단순 연장은 결코 반갑기만 한 현상은 아니다. 50세를 전후해 직장을 떠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그 이전에 실직하는 사례도 많다. 모든 사람이 창업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자영업이 직장 생활보다 고되고 어렵다는 것은 상식에 가깝다. 더구나 남성 위주의 풍토에서 자란 한국 가장의 실직에 대한 절망감은 얼마나 심각한가. 생활고와 외로움을 견디다 못해 자살하는 중년 남성과 노년층이 크게 늘어나고 있는 것이 이를 입증한다. 이번 조사에서도 한국인의 자살률이 OECD 국가 중 가장 높은 10만 명당 21.5명으로 OECD 평균 11.2명의 2배 가까이 높았다.

선배 한 분이 최근 자신이 읽은 시 한 편을 보내주며 한 살이라도 젊을 때 노년의 삶에 대한 준비를 해야 한다고 누누이 당부했다. ‘어느 95세 어른의 수기’라는 시다. 읽고 나니 정신이 번쩍 들어 주변 사람들에게도 소개했다. 공감을 표시하는 이들이 많았다.

‘나는 젊었을 때/정말 열심히 일했습니다./그 결과/나는 실력을 인정받았고 존경을 받았습니다.//그 덕에 63세 때 당당한 은퇴를 할 수 있었죠./그런 지금 95번째 생일에/얼마나 후회의 눈물을 흘렸는지 모릅니다.//내 65년의 생애는 자랑스럽고 떳떳했지만,/이후 30년의 삶은/부끄럽고 후회되고 비통한 삶이었습니다.//

나는 퇴직 후/이제 다 살았다. 남은 인생은 그냥 덤이다./라는 생각으로 그저 고통 없이 죽기만을 기다렸습니다.//덧없고 희망이 없는 삶…/그런 삶을 무려 30년이나 살았습니다.//30년의 시간은/지금 내 나이 95세로 보면…/3분의 1에 해당하는 기나긴 시간입니다.//만일 내가 퇴직을 할 때/앞으로 30년을 더 살 수 있다고 생각했다면/난 정말 그렇게 살지는 않았을 것입니다.//그때 나 스스로가/늙었다고, 뭔가를 시작하기엔 늦었다고/생각했던 것이 큰 잘못이었습니다.//

나는 지금 95세지만 정신이 또렷합니다./앞으로 10년, 20년을 더 살지 모릅니다.//이제 나는/하고 싶었던 어학공부를 시작하려 합니다./그 이유는 단 한 가지…//10년 후 맞이하게 될 105번째 생일날!/95세 때 왜 아무것도 시작하지 않았는지/후회하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여생 위한 투자 아끼지 말아야

얼마 전 한 모임에서 화가 김병종 선생이 소개한 시 한 편도 생각난다. ‘모든 나이는 아름답고, 절정이다’라는 내용의 ‘그때는 그때의 아름다움을 모른다’는 시다. 생각해 보니 20대까지는 나보다는 부모님을 기쁘게 하기 위해 살고, 30대 이후에는 직장과 가정을 위해 산 것 같다. 50대 중반에 이르렀지만 노후 대비는 거의 못 한 터여서 진정 나를 위해 살아야 할 앞으로 30여 년에 대한 걱정이 앞선다. 어떻게 하면 남 신세 안 지면서 품격 있는 노후를 보낼 수 있을 것인가. 준비 없는 노년과 장수는 축복이 아니라 고통이다. 어떤 정부와 자식도 노인을 끝까지 책임지지는 못한다. 하루하루의 삶을 축복으로 여기면서, 여생을 위해 노력하고 투자하는 사람만이 ‘절정의 노년’을 맞을 수 있다. 나는 지금보다 앞으로 더 행복해지고 싶다.

오명철 전문기자 osca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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